4일(한국시각) 호르무즈 해협에서 한국 국적 유조선 ‘한국케미'에 접근하는 이란 혁명수비대 해군 함정.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퇴임을 코앞에 두고 미국과 이란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이란 핵합의 복원’을 공약한 조 바이든 차기 대통령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미-이란 사이의 긴장 수위는 이란 군부 실세 가셈 솔레이마니가 미군의 공습으로 숨진 1주기(1월3일)를 계기로 가파르게 올라갔다. 미국은 1주기를 앞두고 최근 중동 지역에 전략폭격기 B-52를 배치하고, 귀환 예정이던 핵추진 항공모함 니미츠함을 이 지역에 남겨둔다고 발표하는 등 이란의 보복 공격 가능성에 대비했다. 이란은 4일 우라늄 농축 농도를 20%로 높이는 작업을 시작하고, 같은 날 한국 국적 유조선 ‘한국케미’를 나포했다. 우라늄 농축 농도 20%는 핵폭탄 제조에 필요한 90%보다는 낮지만 2015년 이란이 미국·영국·프랑스·독일·러시아·중국과 맺은 이란 핵합의(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에서 제한한 3.67%를 크게 넘는 수치다.
미 국무부는 이란의 우라늄 농축 농도 상향 개시를 “핵 강탈 활동을 확대하려는 분명한 시도”라고 비난했다. 또 한국 유조선 나포를 “국제사회의 제재 압력 완화를 얻어내려는 시도”라고 비난하면서 억류 즉시해제를 촉구했다.
미국과 이란 관계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18년 이란 핵합의를 탈퇴하고 이란에 원유 수출 봉쇄 등 ‘최대한의 압박’을 가하며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달에도 예멘 주재 이란 대사 등에게 제재를 가하고, 이라크 주재 미국대사관을 겨냥한 로켓포 공격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이란을 지목하며 경고하는 등 퇴임 직전까지 압박 고삐를 놓지 않고 있다.
이란의 행동은 바이든 당선자에게 핵합의 복원에 서둘러 나서라는 신호를 보내는 동시에 대미 협상력을 높이려는 의도로 보인다. 2015년 미 부통령으로서 이란 핵합의 도출에 관여했던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는 이란이 핵합의를 준수하면 미국도 이 합의에 복귀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미-이란 관계가 악화할수록 바이든 당선자의 운신의 폭이 좁아질 가능성이 있다.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에너지부 장관으로서 이란 핵합의 체결에 관여했던 어니스트 모니즈는 우라늄 농축 농도 20%로 상향에 대해 “이란이 지금까지 취한 어떤 조처들도 뛰어넘는 ‘게임 체인저’”라며 “이란이 무기 프로그램에 관여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기가 더더욱 어려워진다”고 말했다고 <액시오스>가 4일 전했다. 이란과 대화할 명분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보수 매체인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날 사설에서 “이란은 미 행정부에 2015년 핵합의 복귀를 서두르도록 압력을 가하려고 핵 농축을 상향하는 것”이라며 미국이 유럽과 함께 트럼프 시절의 대이란 제재를 유지하면 이란이 양보 압박에 놓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란은 오는 6월 대선에서 하산 로하니 현 대통령보다 더한 대미 강경파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5개월 안에 핵합의 복원 문제를 정리하는 게 미-이란 양쪽에 유리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란의 공세적 행동은 당장 공화당 등 미 국내에서 바이든 당선자의 대이란 외교 속도전에 제동을 걸게하는 강력한 빌미가 될 수 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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