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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말 한국이 주최하는 다국적 훈련에 참여하는 일본 해상자위대의 호위함이 ‘욱일기’를 달고 부산항에 입항할 것으로 보인다. 한-일 군사 협력 확대를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가 전임 문재인 정부와 달리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침략 전쟁의 상징’이라 여겨지는 이 깃발을 허용한 모양새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25일 정례 브리핑에서, 오는 31일부터 열리는 다국적 해양차단훈련인 ‘아·태순환훈련’(이스턴 엔데버 23·Eastern Endeavor 23)에 참여하는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이 욱일기를 달고 부산에 입항하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통상적으로 함정이 외국항에 입항할 때 그 나라 국기와 그 나라 군대 또는 기관을 상징하는 깃발을 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는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공통적인 사항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함정이 “자위대 함기(욱일기)를 달고 들어올지 지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달고 들어오는 게) 통상적인 국제관례”라고 했다. 한국은 욱일기를 ‘전범기’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상징’으로 생각해 사용 자제를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은 국기인 일장기와 다름없는 자국의 상징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이날 복수의 한-일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이달 말 해상자위대 호위함이 자위대 함기를 단 채 부산항에 들어가 각국 인사들과 교류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윤석열 정부의 한-일 관계 개선 흐름에 따른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어 “대일 관계를 회복하려는 윤 정부는 정치적 판단이 작용한 (욱일기와 관련된 관련) 일련의 경위와 대북 공조 필요성을 고려해 (욱일기) 게양을 허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에 게양되고 있는 욱일기. 연합뉴스
이번 훈련은 오는 31일 제주 동남방 공해상에서 시작된다. 한국이 주최하고 미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호주)가 참여한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이번 훈련에 호위함 ‘하마기리’를 파견할 예정이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10월엔 한국 정부가 제주 국제관함식에 참가하려던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에 욱일기 게양을 자제해줄 것을 요청하자, 일본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불참을 통보한 바 있다. 스포츠 경기에서도 한-일전이 있을 때 욱일기가 등장하면 양국 국민감정이 격화되곤 한다.
욱일기는 일본 정부가 1870년 5월 일본 육군의 정식 깃발로 결정했다. 가로 134.2㎝, 세로 152.5㎝의 네모 속에 태양을 상징하는 빨간 원인 ‘히노마루’를 중심으로 주변에 16개의 광선을 쏘는 모양이다. 1899년 해군의 군함기로도 채택된 해군의 욱일기는 이 욱일기와 달리 히노마루의 모양이 왼쪽으로 좀 치우쳐 있다.
이후 일본 정부는 1954년 자위대를 만들며, 자위대법 시행령을 통해 옛 일본 해군의 ‘군함기’와 모양이 똑같은 욱일기를 ‘자위함기’로 채택했다. 자위대법에 따라 자위대 선박은 자위함기를 일장기와 함께 게양해야 한다.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이 욱일기를 내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앞서 1998년 김대중 정부 때와 2008년 이명박 정부 시기에도 해상자위대 함정은 한국 해군이 주최한 국제관함식에 욱일기를 게양하고 참여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자위대 함정이 한국 해군 주최 훈련에 참여하는 것은 2012년 9월 이후 처음”이라고 전했다.
욱일기를 단 일본 함정이 부산에 입항하면, 한-일 군사 협력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요미우리신문>은 “6월 초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 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를 계기로 일-한 방위(국방)장관 회담이 예정돼 있다. 남은 현안인 ‘레이더 조사’(초계기 위협비행) 문제에 대해 조기 수습 방침을 확인할 전망”이라고 전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