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다] 프리드리히 알프레트 크루프(1854.2.17.~1902)
할아버지 프리드리히 크루프는 네덜란드 이민자의 후손이었다. 1811년 독일에서 철강사업을 시작했으나 돈을 벌지 못했다. 집안이 기울었다. 아버지 알프리트 크루프가 회사를 다시 일으켰다. 철강 사업을 하러 영국에 들락거렸고 이름도 알프레트로 바꿨다. ‘철강왕'이라 불리며 독일의 산업화를 이끌었다. 군수업에도 진출한 그가 만든 대포는 프로이센군을 유럽 최강의 군대로 군림하도록 했고, 그는 ‘대포왕'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프리드리히 알프레트 크루프는 1854년 2월17일 태어났다. 3대째 경영자가 된 그는 회사를 더욱 키웠다. 독일을 대표하는 자본가였다. 황제와도 돈독한 사이였다. 크루프 가문의 저택에 황제가 묵는 전용실을 비워둘 정도였다.
크루프 집안은 여느 자본가와 다른 면도 있었다. 1836년 이후 주거·의료비 지원과 각종 보험 가입 등 직원들 복지에 앞장섰다. 독일제국 총리 비스마르크도 크루프 회사를 보며 사회보장제도 도입에 착안했다고 한다. 크루프 회사에서 일하던 노동자 수만명은 그런 크루프와 끈끈한 애증이 있었던 것 같다. 1893년 프리드리히 알프레트 크루프가 제국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때, 노동자들이 크루프에게 표를 던져 사회민주당이 섭섭해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프리드리히 알프레트 크루프는 게이였다. 당시 독일에는 동성애처벌법이 있었다. 크루프는 이탈리아 카프리에 집을 두고 그곳에서 연인과 만났다. 이탈리아 신문에 ‘어느 독일 기업가의 스캔들'이 보도됐다. 사회민주당 기관지 <전진>이 크루프의 이름을 보도했다. 동성애처벌법을 없애야 한다는 취지였다. 의도야 어쨌건, 요즘 말로 ‘아우팅'이었다. 1902년 크루프는 갑자기 숨을 거둔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같다.
딸 베르타 크루프가 회사를 물려받았다. 결혼 뒤 사위 구스타프가 회사를 운영했다(4대째).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전범기업이 됐다. 강제노동과 나치에 무기를 공급했다는 이유로 전후 5대째 경영자인 손자 알프리트 크루프가 옥살이를 했다. 가문은 회사에서 손을 뗐다. 훗날 크루프는 튀센과 합병해 튀센크루프(티센크루프)가 됐다.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