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전 대구 중구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열린 대구퀴어문화축제 행정대집행 현장이 경찰과 공무원간의 충돌로 혼잡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남재일 경북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어떤 형태든 ‘차별’에 공개적으로 찬성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현실은 각종 차별이 차고 넘친다. 차별은 생각과 행동의 괴리가 크다. 무엇이 차별인지에 대한 생각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리라.
최근 홍준표 대구시장은 두 개의 다른 차별 의제에 대한 입장을 공표했다. 그 내용을 보면 차별의 경계 설정에 선뜻 동의가 되지 않는다. 대구 대현동 이슬람 사원 건축을 둘러싼 경북대 무슬림 유학생과 지역 주민의 갈등에 대해서는 강한 어조로 ‘이슬람 포용’을 주문했다. 하지만 대구 퀴어축제는 공공연하고 명백하게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슬람 포용’의 호소는 사원 건축을 방해하는 행위가 어떤 형태든 이슬람 혐오와 직간접적 관계가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보수색이 강한 지역의 시장이 ‘이슬람 포용’을 호소한 것은 일부 지역민의 반발을 무릅쓰고 보편적 권리를 옹호한 것으로 칭찬받을 일이다. 하지만 행정기관의 수장이 앞장서 퀴어 축제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의도치 않게 성소수자 차별을 선동하고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 특히 성소수자 차별이냐, 아니냐는 경계를 가장 좁게 설정하는 혐오 세력의 입장을 옹호해 성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그간의 사회적 논의를 깡그리 무시할 때 이런 위험은 배가 된다. 차별을 차별이 아니라고 공공기관이 보증서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홍 시장이 8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긴 입장문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한다. “대구의 상징인 동성로 상권의 이미지를 흐리게 하고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성문화를 심어줄 수 있는 퀴어축제를 반대한다.” “성소수자의 권익도 중요하지만 성다수자의 권익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시민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그런 퀴어 축제는 안 했으면 한다.” 이 내용은 국제화된 ‘정치적 올바름’의 잣대로 보면 명백한 성소수자 혐오다. 성소수자 대응에 대한 세계 규범은 성적 지향의 차이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이 기준으로 보면 “잘못된 성문화”, “혐오감을 주는” 등의 표현은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비정상’으로 배제하는 명백한 차별인 것이다.
이슬람 포용을 요구하면서 성소수자 혐오를 드러내는 것은 정치적 올바름의 관점에서 모순적이지만, 표 계산이 체화된 정치인에게는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보수 진영의 대선 주자에게 결집력이 강한 기독교 표와 유동성이 강한 20대 표는 중요한 전략적 공략 대상이다. 이슬람 포용은 일부 기독교 표의 이탈이 우려되지만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하는 20대 표를 공략할 수 있다. 퀴어축제 반대는 일부 20대(특히 여성)의 이탈을 예상할 수 있지만 기독교 표 득표에 유리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슬람 포용과 성소수자 혐오는 기독교 표와 20대 남성표를 염두에 둔 표 계산의 결과와 행보가 일치한다.
홍 시장은 줄곧 ‘파워풀 대구’를 내세웠다. 이슬람 포용을 주장하는 이유도 ‘국제화된 대구를 만들기 위해서’이고, 퀴어 반대의 논거도 ‘대구의 상징인 동성로 이미지를 해치기 때문’이다. 파워풀 대구 안에서 이슬람 포용과 퀴어 반대는 불화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 걸음 더 나가 생각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국제화 시대의 파워풀 대구는 문화적 토대로서 ‘컬러풀 대구’를 필요로 한다. 무지개색을 표방하는 퀴어 축제를 수용하지 못하는 완고하고 편협한 시민은 절대로 파워풀한 도시의 주인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