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대구시장이 17일 오전 대구 중구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열린 대구퀴어문화축제 행정대집행 현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병철 |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홍준표 시장님, 안녕하세요. 대구 퀴어축제에서 공무원과 경찰이 대치한 모습을 보고 몇자 씁니다. 이슬람에 관해 배운 뒤로 편견과 오해가 없다고 말씀하셨기에, 성소수자와 관련해서도 의학적인 사실을 알리고 싶습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성(性)에 대한 이해가 크게 변했습니다. 성은 인간을 규정하는 요소이자 사회적 터부가 강해 받아들이기 쉽지 않겠지만,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여성과 남성이란 구분은 ‘생물학적 성’이지요. 대개 여성은 자기를 여성이라 느끼고, 남성은 남성이라 느낍니다. 스스로 느끼는 성별을 ‘성적 정체성’이라 합니다. 그런데 여성이 스스로 남성이라 느끼거나, 그 반대인 경우가 있습니다. 생물학적 성과 성적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거죠. 이를 트랜스젠더라 합니다. 일치하면 시스젠더라 하고요. 영어에서 시스(cis-)와 트랜스(trans-)라는 접두사는 ‘이쪽’과 ‘건너쪽’이란 뜻입니다. 생물학적 성과 성적 정체성이 같으면 시스, 반대면 트랜스입니다. 호르몬 치료나 수술을 받고 성이 바뀐 경우를 흔히 트랜스젠더라 하지만 엄밀하게 보면 틀린 표현입니다. 성전환자가 정확한 표현입니다.
‘성적 표현’이란 옷과 장신구, 행동, 언어 등 외관상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남성이 화장하고 드레스를 입는다면 생물학적 성과 성적 표현이 일치하지 않는 거지요. ‘성적 지향’은 누구에게 끌리느냐입니다. 대개 이성을 사랑하지만, 동성에게 끌리는 사람도 있지요. 이성애자, 동성애자입니다. 남성 동성애자를 게이, 여성은 레즈비언이라 하는 건 아시지요?
생물학적 성, 성적 정체성, 성적 표현, 성적 지향은 성의 네가지 차원입니다. 각 차원은 독립적입니다. 연결해 생각하면 안 됩니다. 어떤 남성이 머리를 기르고, 화장하고,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다닙니다. 스스로는 남성이라 생각합니다. 생물학적 남성, 성적 정체성 남성, 성적 표현은 여성이죠. 이분은 남성을 사랑할까요, 여성을 사랑할까요? 모릅니다. 성적 지향은 다른 차원과 별개니까요. 그런 분 중에는 여성과 결혼해 자식 낳고 사는 분도 있고, 남성과 파트너인 분도 있습니다.
인간은 남녀로 나뉜다는 말은 과학적으로 더는 진실이 아닙니다. 성의 네가지 차원마다 남녀가 존재하므로 16가지 유형이 나오지요. 여기에 생물학적 성이 분명치 않거나(간성), 성적 표현이 중성이거나, 성적 지향이 양성애자·무성애자인 경우가 추가됩니다.
성적 정체성은 더 복잡하죠.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는 분이 있는가 하면, ‘내 속엔 남녀가 모두 있어’ ‘나는 3분의 1은 남자, 3분의 2는 여자야’라는 분도 있습니다. 논바이너리 또는 젠더퀴어라 합니다.
바이너리란 ‘이분법’이니, 논바이너리는 성별을 남녀로 구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퀴어(queer)란 본디 ‘기묘하다’는 뜻이지만, 이제는 성소수자를 통칭합니다. 대구 퀴어축제도 성소수자 축제잖아요. 왜 축제까지 필요할까요? 시장님이 어느 날 깨어보니 여성이 됐다고 생각해보세요. 주변에서는 매 순간 여성에게 맞는 태도와 행동을 기대하고요. 얼마나 괴롭겠어요?
성소수자는 성장하며 많은 문제를 겪습니다. 왕따에 시달리고, 약물에 빠지거나, 비행을 저지르거나, 가족에게 버림받기도 합니다. 성인이 돼도 사회가 남녀라는 이분법으로 움직이므로 순간순간이 고통입니다. 우울, 불안 등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자살률도 전체 인구 평균의 9~10배에 이릅니다.
이런 상태를 일부러 선택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과학은 퀴어가 타고나는 특성임을 밝혔습니다. 삶은 여전히 힘들지만 부도덕하다, 혐오스럽다 소리는 듣지 않게 된 거지요. 그걸 기념해 축제를 여는 겁니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삽니다. 사회의 수준은 소수자나 약자가 어떤 대접을 받는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들이 무시당하고, 희생을 강요당하고, 핍박받지 않아야 성숙한 사회입니다. 시장님이 이끄시는 대구시가 그런 사회가 되기를 손 모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