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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정말 가닿을 거야

등록 2023-11-06 19:09수정 2023-11-07 02:40

10월28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서 참석자들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159배를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0월28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서 참석자들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159배를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왜냐면] 최지원 | 20대·강원 강릉시

얼마 전 그리운 이에게 연락을 했다. 답장이 올까?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 자기 자신을 바꿔가며 애쓰는 것이 어떤 응답으로 돌아올까? 아니, 응답이 오긴 할까?

10월29일에는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집회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희생자 159명의 이름 하나하나를 부를 때마다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였다. 어딘가로 떠나 별이 된 이들은 우리가 보내는 신호에 응답을 보낼까? 아무도 그 답을 몰랐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김금희의 소설 ‘반월’에는 거의 응답받지 못하는 이들이 나온다. 한 여고생은 자길 단짝이라고 부르지 말라는 유일한 친구와, 한 번도 본 적 없고 가끔 졸면서 쓴 답장을 보낼 뿐인 이모에게 규칙적으로 편지를 쓴다. 술과 약으로 하루를 나는 이모에게 매일 전화를 거는 남자아이도 있다. 이혼해서 혼자 사는 엄마를 만나기 위해 몇 번이고 전화하지만 매번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는다. 그래도 전화는 계속 울린다.

​나는 이들이 거의 응답받지 못한다 해도 할 수 있는 걸 계속하기 때문에 용기 있고 품위 있어서 좋다.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처럼 힘든 일을 겪은 이들이 다시는 이런 슬픔이 없길 바라며 자신들의 슬픔으로 하는 일을 보면 마음이 부르르 떨린다. 내 몸은 그럴 때 뭐라도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하며 두리번거린다. 왜냐하면 나 또한 돌아오지 않는 답장을 아주 간절히 기다려 보았으니까. 삶이라는 게 어쩌면 닿지 못해도 보내는 신호일 수도 있으니까.

​단막극 ‘아득히 먼 춤’에는 어떤 질문이 나오는데, 그 질문은 우리 삶에서 한 번쯤 던져보았을 간절한 물음과도 닮았다. 혼자 태어나서 태어난 직후부터 많은 것과 스쳐 지나가다 언젠가 홀로 죽게 될 운명인 우리가 평생을 걸쳐 쉬지 않고 보내는 신호는 과연 어떤 신호인가? 그리고 그 신호가 하는 일은 무엇일까? 극중 대사는 이렇다. “아무도 없는 숲에서 나무가 쓰러지면 소리가 날까?” 누군가는 들을 사람이 없으니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누군가는 그것이 어딘가 가닿을 거라고 한다.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까? 그런 일이 비슷하게나마 있었다.

​ 얼마 전 기후·동물·생태 프로젝트 집단인 ‘이동시’의 전시 ‘비극 경연’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말레이시아의 도심 속 숲에 가족은 모두 죽고 홀로 남은 긴팔원숭이 ‘솔로’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솔로는 숲에서 울음소리를 내는데, 이런 뜻이라고 했다. “누구 나랑 함께하지 않을래?” 하지만 그 숲은 도시에 밀려 점점 작아지고 있고 다른 긴팔원숭이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의 노래에 한국의 한 전시장에 있는 인간들이 응답했다. 어떻게? 긴팔원숭이 연구자 김산하가 솔로의 울음소리를 최대한 재연했고 그걸 들은 사람들은 마음으로 혹은 박수로 그에 대답했다. 평생을 내 노래를 들어줄 이를 그리워하며 밤을 견디는 우리가 숲 속에 홀로 남은 비인간 동물의 노래에 대답하는 일, 기뻐서 눈물이 났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내가 모르는 방식으로 응답이 일어난다면 우리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삶의 의욕이 뚝 떨어진 상대를 다시 잘 먹고 잘살게 해 주는, 충전기 같은 나의 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어떻게 그렇게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어? 음. 그건 내가 그런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야.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는 또 다른 친구에겐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이 추운 날에도,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널 계속하게 하는 게 뭐야? 음. 그건 여기가 내 자리 같기 때문이고 여기 있으면 너 같은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잖아. 수없이 많은 이별이 지구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금, 우리가 강력하고 간절하게 원하는 그 만남이 지금 여기서 이루어지길 바란다. 응답을 원하는 우리가 바로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응답이 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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