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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없는 휴일’, 그게 그리 무리한 요구인가요?

등록 2017-04-20 11:37수정 2017-04-20 11:46

[HERI, 대선 의제를 말하다]-③학생 휴식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HERI)이 19대 대선 의제를 짚어보는 온라인 기획 ‘HERI, 대선 의제를 말하다’를 연재합니다. 청년·노동·교육 등 각 분야 현장 전문가들이 주요 후보 공약을 포함한 대선 의제를 비판적으로 점검합니다.

심상정 후보님께.

4월 4일자 <한겨레>를 읽다가 놀랐습니다. 청소년인권단체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의 질의에 대해 후보께서 학원 휴일 휴무제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것으로 나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세히 찾아보니 이렇게 답변하셨더군요. “학습시간 줄이기는 전폭적으로 찬성합니다. 방법 면에서는 학교와 교육을 바꿔 자연스럽게 감소시키는 것을 선호합니다. 심야교습 제한은 찬성합니다만, 그 외에 인위적으로 시간 제한하는 것은 조금 더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이것이 후보님의 진심입니까? 그렇다면 죄송하지만 제가 좀 쓴소리를 하겠습니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의 고교생들. <한겨레> 자료사진
서울 대치동 학원가의 고교생들. <한겨레> 자료사진
우리나라 학생들의 주당 학습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로 과로사 판정 기준인 주당 60시간을 훌쩍 넘어 70.1시간(일반고 2학년), 80.6시간(특목고 2학년)에 이릅니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공부하지만 학습효율은 핀란드의 절반이고, 행복지수는 세계에서 꼴찌입니다. 일찍이 앨빈 토플러는 “대한민국 학생들은 미래에 의미 없는 공부에 하루 15시간씩 허비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이게 교육입니까? 이런 현실을 내버려두고 있는 사회가 정상입니까?

현실이 이런데 후보님의 해법은 너무도 안이합니다. ‘교육을 바꾸어 자연스럽게 감소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런 방법이 무엇인지 저도 알고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아이들은 과로사 직전에서 허덕이고 있는데 어느 세월에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것입니까? 무한경쟁의 쳇바퀴는 과속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브레이크를 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참으로 한가한 이론적 이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위적 시간 제한’을 반대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이렇게 반문해 보겠습니다.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근로자의 휴식권이 ‘인위적 시간 제한’ 없이 회사가 자율적으로 하도록 해서 보장될 수 있겠습니까? 자유론의 원조인 존 스튜어트 밀도 휴일이 성립되려면 온 사회가 합의해야 하는 것이고 이를 어기는 것을 규제하는 것은 자유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즉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규제인 것입니다. 누구보다 사회적 약자의 휴식권을 존중해야 할 정의당이 정작 성인들보다 더 가혹한 조건에 처한 청소년들의 현실을 놓고 더 검토가 필요하다는 느긋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청소년은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일까요? 성인들은 주5일제가 되었지만 학생들은 과로사 직전입니다. 청소년이 가장 약자입니다.

학원 심야영업을 밤 10시 이전으로 앞당겨야 합니다. 중학생·초등학생은 더 앞당겨야 합니다. 학원측은 그렇게 하면 풍선효과가 생겨 과외가 증가한다고 주장하지만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사실은 반대입니다. 밤 10시 규제지역과 밤 12시 규제지역을 비교하면 전체적인 심야 사교육이 현저하게 감소하였습니다. 학원 휴일 휴무제를 실시하면 마찬가지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학부모들의 절대 다수가 찬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원 휴일 휴무제를 실시하면 75%는 그냥 쉬겠다고 하고, 17%는 다른 날로 옮기겠다고 하고, 단지 4%만이 어떤 형태로든 계속하겠다고 했습니다. 제도의 수용성이 무척 높습니다. 제도의 실효성이 분명하고, 국민들이 이렇게 원하고 있는데 무슨 검토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 검토는 학원업계의 반발에 대한 검토일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분명하게 대답해 주십시오. 학원업계의 이익을 줄이지 않으면서 학원 시간을 줄이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학원을 전면 금지하자는 것도 아니고 과도하게 팽창된 부분을 줄이자고 하는 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지도자는 국민의 공익과 학원업계의 이익 갈등 상황에서 어떤 가치를 선택할 것인지를 분명히 밝혀야 할 것입니다.

한편 저는 이 대목에서 소위 진보 지식인의 고담준론에 한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많은 문제를 거시적 구조 문제로 환원하기를 좋아합니다. 지금 당장 과도하게 팽창된 학원영업을 규제하자는 이야기를 하면 그것이 실효성이 있는지, 정당성이 있는지를 살펴서 시행하면 될 것을, 근본적으로 입시경쟁과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논리를 내세우며 작은 개혁은 시시한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논리야말로 급진적인 것 같으면서 사실은 현실의 개혁을 지연시키는 반동적인 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논리를 학원업자들의 입으로 듣게 되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학원을 탓하지 말고 입시경쟁을 해결해야 한다. 공교육을 개혁해야 한다” 과연 그들이 진정으로 입시경쟁이 사라지기를 원하는 것일까요? 그러면 생업을 포기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들은 지금 당장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부터 해결하라고 하며 개혁을 저지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논리를 정의당의 입장으로 듣게 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말을 줄이겠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과열 경쟁을 규제하는 학원 휴일 휴무제와 심야영업 제한을 법제화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현상유지를 하자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이 괴로운데 아이들에게 무한경쟁의 쳇바퀴 속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심상정 후보님, 이 아이들에게 언제까지 자연스럽게 해결될 때를 기다리며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됩니까?

김진우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

학원 휴일 휴무제 도입와 관련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의 질의 때는 “입장을 정하지 못 했다”고 답했으나, 최근 교육시민운동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 보낸 답변서에서는 “초등학생 만큼은 가족과 함께 휴일을 보내고 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학원 휴일 휴무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애초엔 적극 찬성한다는 뜻을 밝혔으나,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질의에는 “학생들의 휴식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 도입의 필요성이 있으나, 방안에 대해선 학생·학부모 등의 의견을 수렴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추진할 예정”이라며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인터넷 강의 등 실제적 규제의 어려움이 예상된다. 국민 의견 수렴을 통해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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