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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재벌개혁, 참여정부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등록 2017-04-26 13:52수정 2017-04-26 14:09

[HERI, 대선 의제를 말하다]-⑥재벌개혁

정권 초기에 선택과 집중 필요
경제위기론, 외자 침탈론 등 극복 과제
개혁 의지 강한 경제팀 진용 짜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HERI)이 19대 대선 의제를 짚어보는 온라인 기획 ‘HERI, 대선 의제를 말하다’를 연재합니다. 청년·노동·교육 등 각 분야 현장 전문가들이 주요 후보 공약을 포함한 대선 의제를 비판적으로 점검합니다.

19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주요 후보들은 재벌개혁을 주요한 경제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후보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재벌 중심 경제시스템은 수명을 다했고 이를 방치하면 혁신은 질식하고 소득과 빈부의 격차는 심해질 것이란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등 5당의 후보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및 집단소송제 도입 △총수 일가 일감 몰아주기 근절 △대기업 갑질 근절 △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등 4가지 공약에 모두 동의해 이런 제도가 다음 정부에서 실행될 가능성이 커졌다.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모습.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모습.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하지만 재벌개혁이나 공정한 시장경제 확립은 실행이 더 중요한 사안이다. 그동안 아이디어나 프로그램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재벌과 기득권 집단의 저항에 막혀 제대로 실행을 못 한 것이기 때문이다.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는 말이 보여주듯 이미 경제권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다. 이런 힘센 집단을 상대해야 하는 데다 대부분의 공약이 법률 개정을 필요로 하는데 현재 주요 정당의 의석 분포를 볼 때 누가 집권하더라도 실행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래서 강력한 의지와 면밀한 계획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의 재벌개혁 실패는 이런 점에서 ‘반면교사’ 삼을 만하다. 2002년 대통령선거 국면에서 노무현 후보는 성장과 분배, 자본과 노동,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균형을 경제정책의 방향으로 제시했다. 재벌 중심 경제구조를 혁파하고 공정한 시장질서를 확립하는 것은 이를 실천하기 위한 중간목표였다. 구체적인 정책으로는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 도입 △상속세제 개편 △사주일가의 지배력 확대에 금융계열사의 자금을 동원하는 행위를 규제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결기를 내비치며 시작한 개혁작업은 재벌 및 기득권 집단의 저항에 밀려 불과 6개월 만에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재벌의 견제는 끈질기고 집요했는데 우선 대기업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경련은 새로 출범하는 정권의 개혁안에 노골적으로 반대했다. 한 예로 당시 김 아무개 전경련 전무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새 정부의 경제정책이 “사회주의적”이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보도돼 큰 논란을 빚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벌의 저항에 대해 경고하기도 하고, 일부 참모가 “경기가 좀 어려워지는 한이 있어도 재벌개혁은 꼭 할 것”이라는 의지도 내보였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신용카드 사태의 후유증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때마침 터진 사스(SARS)로 소비심리가 위축돼 2003년 상반기 경기가 하강하자 정권은 초조해하며 재벌에 손을 내밀었다. 정부 출범 5개월쯤 된 7월에는 삼성경제연구소가 고안한 ’2만 달러 국민소득’ 어젠다에 관심을 보이더니 8월 15일 경축사 연설에서 대통령이 이를 언급함으로써 국정어젠다로 격상했다. 이로써 노무현 정부 초기의 개혁 기조는 완전히 사라지고 경제사회정책은 성장과 친재벌로 돌아서게 된다.

참여정부의 재벌개혁이 실패한 원인을 세 가지로 정리하면 먼저 대통령과 집권당이 재벌개혁에 대해 확고한 의지와 실행계획이 부족한 점을 들 수 있다. 개혁을 표방했지만 초대 경제사령탑에 경제부처에서 잔뼈가 굵은 관료 출신 인사를 기용한 것부터 앞뒤가 안 맞았다. 초대 김진표 부총리는 취임 일성으로 “법인세 인하”를 내세웠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철회하는 등 개혁 기조와는 거리가 있었다. 확고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 보니 정치일정을 의식하게 되고 큰 소리 나고 인기 없는 개혁정책은 지속하기 어려웠다. 2004년 4월로 예정된 총선이 다가오는데 정부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별다른 정책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재벌에 투자를 ‘읍소’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두 번째는 기득권 세력의 저항 담론을 돌파할 논리적 준비가 부족했다. 기업의 기를 살려주면 투자와 일자리가 늘어나고, 자연히 국민소득도 늘어날 것이란 ‘낙수효과’ 논리를 반박하고 국민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게 진정한 성장의 길이란 점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는 당시 청와대, 정부, 집권당에 포진한 주요 정책결정자들이 신자유주의적 신념을 공유하는 관계, 즉 모두가 같은 ‘인지적 공동체’(epistemic community) 에 속해 있었던 점에서 어쩔 수 없는 한계이기도 했다.

아울러 2003년 소버린 사태 이후 부각된 경제 민족주의 감정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글로벌 투자펀드인 소버린이 SK(주)의 지분을 취득한 뒤 취약한 지배구조를 활용해 엄청난 투자차익을 올린 이 사태 이후 ‘민족자본’ 대 ‘외국자본’의 대립 담론이 만들어졌고 이는 재벌개혁의 당위성을 지속해서 위협했다. 재벌은 민족자본을 자처했는데, “민족자본을 재벌개혁이란 이름으로 억압하는 것이 옳으냐”는 논란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세 번째는 시민과 시장의 힘을 원군으로 활용하는 전략이 미흡했다는 것이다. 개혁하면 내 주머니 사정이 나아질 것이란 믿음을 국민에게 줄 때 개혁은 탄력을 받게 된다. 하지만 참여정부가 내세운 경제어젠다인 △동북아 경제 중심 국가건설 △공정한 시장경제 확립 등이 어떻게 내 소득 개선으로 이어질지 피부에 잘 와 닿지 않았고, 언론을 통해 이를 설득하는 노력도 미흡했다. 언론은 정권 초에는 압도적으로 ‘재벌개혁’을 응원했으나 2003년 중반 이후에는 ‘경제위기 극복’과 ‘성장’으로 돌아섰다.

비록 10년도 넘은 참여정부의 사례이지만 재벌개혁과 공정한 시장경제 확립이란 점에서 과제는 비슷하며, 새 정부에서 이런 상황은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벌써 ‘공정위 권한이 강화되면 투자와 고용이 움즈러 들 것’이라거나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제2의 소버린 사태가 난다’라는 등 재계의 입장을 대변한 보도가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면밀한 준비와 실행이 필요한 것이다.

새 정부가 재벌개혁과 관련해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속전속결’과 ‘취사선택’이다. 지금은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로 정경유착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강하고, 재벌기업의 이익을 대변해 온 전경련이 해체 위기에 몰려있는 등 반대세력의 힘도 취약해진 상황이다. 이럴 때를 놓치지 않고 개혁의 고삐를 조여야 하는데, 핵심 개혁은 집권 6개월 이내에 완료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짧은 시간에 모두를 다 할 수 없다면 불가피하게 취사선택해야 하는데, 한번 실행되면 뒤로 돌리기 어렵고 다른 개혁 프로그램이 감자 줄기처럼 따라 오는 ’미끄러운 비탈길형’ 개혁을 먼저 하는 것이 현명하다. 예를 들어 기업이 회계감사법인을 임의로 선정하기 때문에 회계법인이 ‘을’이 되는 모순을 제도적으로 개혁하면 시장시스템에 의한 기업 감시가 힘을 받게 된다. 안철수 후보 진영에서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6년은 자유 수임하되 3년은 지정 수임하는 ‘감사 혼합제’를 제시한 것은 이런 점에서 주목된다.

개혁할 때 또 하나 주의할 점은 경기를 살려가며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가 계속 움츠러들면 개혁의 동력은 사그라지게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경기부양을 해가면서 개혁을 하겠다는 민주당의 계획은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아울러 개혁을 하더라도 재계를 싸잡아서 적으로 돌리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 시장에는 대기업도 있지만 시장원리가 투명하게 작동하길 원하는 기관투자가, 소액주주, 중소-중견기업, 자영업자가 있다. 노동조합을 포함해 모두가 응원하는 개혁을 해야 한다. 인수합병(M&A) 제도가 가진 시장규율 기능을 살려가야 하지만, 외국자본이 마음대로 활개 치고 다닌다는 인식을 국민이 갖지 않도록 적절한 견제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개혁을 하려면 제대로 실행할 진용을 짜야 한다. 재벌체제에서 성장한 관료, 시장지상주의 신념에 투철한 경제학자에게 개혁의 키를 맡기는 것은 개혁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개혁을 할 때라는 판단이라면 경제부총리, 경제수석, 공정거래위원장 등의 진용을 개혁성향 인사로 채워야 한다. 아울러 거의 모든 개혁 프로그램이 국회의 입법을 거쳐야 하는 점에서 국회에서 여야의 협치를 끌어내는 정치력을 발휘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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