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권태호ㅣ에디터부문장
예측대로였다. ‘거침없는 스타일’과 ‘공허한 콘텐츠’.
29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국민 기자회견’을 본 개인적 소감이다. 대통령선거 아니라, 작은 조직이라도 선출직에 나서는 사람은 세가지 물음에 답을 갖고 있어야 한다. ‘왜 나오나’, ‘무엇 하려 하나’, ‘왜 당신이어야 하나’ 등이다. 기자회견에서 나타난 윤 전 총장 답변은 ‘반문(문재인) 정권교체 하러 나왔다’, ‘자유민주주의 하겠다’, ‘국민들이 나를 원한다(여론조사 1위)’로 요약된다.
한가지 분명히 드러낸 점은 자신을 ‘보수 후보’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는 것이다. 회견에서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호국 등을 강조한 것도 보수층 마음을 얻겠다는 나름의 전략으로 보인다. 그러나 추가적 설명이 부족한 탓에 그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가 오래전 ‘자유대한’, ‘멸공통일’ 용어처럼 들렸다.
이전까지 ‘윤석열’은 이념적 색채가 상대적으로 옅었다. 평소 “나는 원래 보수주의자”라고 말해왔다곤 하나, 윤석열은 그저 ‘좌든 우든 가리지 않고 걸리면 수사하는’ 전형적 특수부 검사일 뿐 이념적으로 경도된 이미지는 상대적으로 약했다.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윤석열은 국민의힘 안에서도 오른쪽으로 깊숙이 들어간 모양새다. 국민의힘 주자들 가운데에도 유승민, 원희룡보다 홍준표, 황교안 쪽에 가까워졌다.(공교롭게 3명 모두 검찰 출신이다)
윤 전 총장이 ‘보수 본색’을 드러낸 건 별문제 아닐 수도 있다. 엑스파일이나 도덕성 검증도 어쩌면 엠비(MB·이명박) 때처럼 ‘그래서, 어쨌다고’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보수든 진보든 ‘준비되지 않은’ 후보는 곤란하다. “월드컵이 경험 쌓기 위해 가는 곳이 아니”라는 이영표의 말처럼, 대통령은 훈련하는 자리가 아니다. 대선을 불과 몇달 남겨두고 ‘깜짝쇼’처럼 등장해 ‘벤처 투자’ 노리는 전문가 규합하고, 팬클럽 형성하고, 민심 탐방하고, 세몰이하는, 마치 오락 프로그램 서바이벌 게임처럼 대선이 진행되는 건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은 거의 다 상원의원 또는 주지사 출신이다. 오랜 기간 학습이 아닌, 정치적 훈련과 경험을 축적한 이들이다. 예외가 도널드 트럼프다.
그리고 29일 회견에서 더 우려되는 건 ‘빈약한 콘텐츠’보다 ‘넘치는 자신감’이다. 자신감이 넘치면, 준비가 소홀해진다.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도리도리’(좌우로 머리를 흔드는 것) 등을 보면, 예행연습도 별반 하지 않은 듯하다. 윤석열은 아마 평생 단 한번도 꿀린 적이 없었을 듯하다. 교수 아버지 밑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고, 덩치도 커 어디 나가 맞아본 적 없었을 것이고, 공부 잘해 서울 법대 갔고, 사법시험에서 비록 9수를 했다 하나 신림동 고시촌 ‘맏형’으로 지냈고, 검찰에서도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처럼 ‘가오 한평생’을 살았을 수 있다. 그래서 무섭다.
윤 전 총장은 문재인 정부와의 불화로 컸다. 그가 추천한 이들은 검사장 인사에서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2019년 그가 막 검찰총장이 됐을 때는 정반대였다. 대검찰청 검사장급 인사 7명 중 3명을 이른바 ‘윤석열 사단’으로 채웠다. 또 고위간부 인사 39명 중 80% 정도를 ‘특수통’으로 채웠다. 검찰 내부에서 ‘윤석열 스타일’이라 하면, ‘목표 정하면 어떻게든 결과물을 이뤄낸다’는 것과 ‘맏형 리더십’, ‘자기 식구 잘 챙기기’로 일컬어진다. 다른 총장들도 다 ‘내 새끼’ 챙기고 싶었겠지만, 주위 눈 의식해 그렇게 못 하고, 안 하고, 덜 했다. 그런데 윤석열은 좀 달랐다 한다. 최근에도 (인사 물먹은) 검찰 후배들에게 전화를 걸어 위로했다는데, 검찰을 떠나 대선 후보로 나선 이로선 매우 부적절한 처신이다. 거침없는 ‘윤석열 스타일’이란, 다른 말론 제어와 절제가 부족하거나 없는 것으로도 읽힌다. 만일 ‘검사 윤석열 스타일’이 국정 운영에 그대로 옮겨진다면 큰일이다.
과거 리더란 대범하고, 거침없고, 추진력 있는 이여야 했다. 그러나 ‘무데뽀’의 시대는 갔다. 오히려 섬세한 소심함이 시대정신에 더 가깝다고 본다. ‘서세원’이 아닌, ‘유재석’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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