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기사님, 까칠해서 죄송했습니다”

등록 2021-07-07 17:54수정 2021-07-08 02:07

편집국에서

정세라 | 사회정책부장

주변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4차 유행’이 기정사실화되고 직장인들이 바글바글한 서울 시내 알 만한 밥집, 식당가 확진자 나온 곳 리스트가 도는 판이니, 별로 이상할 게 없는 일이다.

신천지교회나 동부구치소 건처럼 눈에 띄는 집단감염 발생보다는 산발적 감염의 누적이 주된 요인이라고 한다. 그냥 너와 내가 밥집에서, 카페에서, 때론 주점에서, 학원과 직장에서 마주쳐서 발생하는 일이다. 서울 강남 한복판 현대백화점을 다녀간 불특정 다수에게 검사를 권고하는 재난알림문자도 날아드는 판이다.

당장 주변에서 확진자가 나오고 거리두기 격상 얘기가 나오니, 여러 시나리오가 머릿속을 복잡하게 오간다. 그나마 오전이라도 매일 등교하는 초등 저학년 아이 상황이 바뀌면 어쩌지? 기나긴 낮 시간은 학원으로 채웠지만, 늦은 퇴근을 메워주던 부모님의 아이 돌봄은 어쩌지? 팔순이 가까운 아버지는 다행히 접종완료자가 됐지만, 엄마는 6월 초과예약 사태로 미접종자로 남아 있다. 인구 대비 30% 접종률이니, 7월 중엔 이런 ‘반쪽이’ 접종 가구이거나 아예 ‘미’접종 가구로 남아 있는 경우가 허다할 터이다.

일과 삶의 균형은 원래도 쉽지 않았건만, 4차 유행이 급발진하면서 함수는 더 복잡해졌다. 지인은 자가격리에 들어갔고, 지역에선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돌고 있을 공산도 없지 않다. 고위험군에 ‘반쪽이’ 접종 가구인 친정집에 아이 맡기는 일은 잠깐 멈추기로 했다. 당장 부부 중 누군가 이른 퇴근을 해야 한다. 어제(6일)가 그런 날이었다. 오랜만에 이른 퇴근을 하기로 하고, 오전부터 주변에 일정을 공지해놨건만, 일이라는 게 늘 예측이 가능하던가. 5시 반에 퇴근을 해볼 생각이었지만, 수도권 확진자 수는 역대 최다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고, 상당수가 재택근무 중이라 당장 회사에 남아 업무를 처리할 인력을 찾기도 여의치가 않았다.

“○○아, 5시 반에 출발하려고 했는데, 좀 늦어졌어. 6시에 다시 전화 줄게.” “엄마 출발했어?” “응, 조금 더 늦어졌어.” “6시 반에 전화해줄게….” 양치기 엄마의 거짓말 퍼레이드가 되풀이되고, 저녁에 혼자 있는 아이가 어느 순간 전화를 안 받는다. 회사 일은 발목을 붙잡고, 속은 타고, 전화가 안 되는 애는 어디로 증발했는지 모르겠고….

허둥지둥 급한 일만 막아놓고, 9시에 가까워 집에 오니 아이는 서러움에 눈물이 주룩주룩…. 전화기는 집에 팽개쳐두고 다 늦은 저녁에 놀이터에 나서봤다가 얼마나 쓸쓸했는지, 애들은 저녁 먹으러 가는데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하소연이 늘어진다. 아마 코로나 와중에 이런 일들을 집집마다 겪었고, 겪고 있고, 앞으로도 겪으리라….

7~8월을 지나 9월에 접어들면 반쪽이 접종 가구가 온전한 접종완료 가구가 되고, 9월에 학교들이 전면 등교를 하게 되면 그럭저럭 견딜 만한 일상으로 회복할까 했는데, 고빗길은 참 빨리도 왔다.

“7~8월 강력 방역하고 조심해야 9월에 학교 보내지요.” “여름에 접종 많이 하니까 좀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요.” “자영업자 또 굶게 생겼네요ㅠ” “접종률 높아지면 감염자 수와 상관없이 서서히 일상으로 복귀하지 않을까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주변에서도 다들 걱정 반, 희망 반으로 현재의 고빗길을 지켜보고 있다. 정부는 완화된 새 거리두기 시행을 일주일 더 유예하고, 2~3일 지켜보아 새 거리두기 4단계 격상이나 여타 특단의 조처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또 ‘1가구당 1인 이상 검사받기’ 캠페인도 들고나왔다. 그만큼 ‘숨은 감염자’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뜻이다. 당분간은 느슨해진 서로의 방역 빈틈을 돌아보며 고삐를 조일 수밖에 없다.

이나저나 엊저녁 퇴근길에 마주쳤던 택시기사님껜 참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눈썹이 휘날리게 회사를 나와 택시를 잡아타려니, 기사님은 마스크를 벗고 왕만두를 한입 크게 베어 문 찰나였다. “마스크 안 쓰셨네요!” 코로나 노이로제에 새된 소리를 지르고 다시 뛰쳐 내리니, 뒤통수 너머로 “지금 쓸 거예요” 기사님의 당황하고 억울한 듯한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요즘 예민한 시기라…. 배고파 보이셨는데 참 죄송합니다.

seraj@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은 가도 국민의힘이 남는다. 그게 문제다 [아침햇발] 1.

윤석열은 가도 국민의힘이 남는다. 그게 문제다 [아침햇발]

경호처 직원들, 끝까지 비겁한 윤석열에게 인생 걸 텐가? [1월3일 뉴스뷰리핑] 2.

경호처 직원들, 끝까지 비겁한 윤석열에게 인생 걸 텐가? [1월3일 뉴스뷰리핑]

[사설] 윤석열 체포 불발, 제2의 내란이다 3.

[사설] 윤석열 체포 불발, 제2의 내란이다

[사설] ‘내란 비호 세력’ 자처하는 국무위원과 대통령비서실 4.

[사설] ‘내란 비호 세력’ 자처하는 국무위원과 대통령비서실

[사설] ‘윤석열 로펌’ 자처하는 국민의힘, 윤석열과 함께 가려 하는가 5.

[사설] ‘윤석열 로펌’ 자처하는 국민의힘, 윤석열과 함께 가려 하는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