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락 산업팀장
지난 9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한 미국 경제 내 독점화 현상을 제어하기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는 지난 1월 취임한 이후 30대 초반의 경제학자로서 빅테크 기업의 분할 필요성을 주장해온
리나 칸을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에, 정보기술(IT) 플랫폼의 독과점화에 강한 우려를 드러내온 또 다른 학자 팀 우를 대통령 특별보좌관에 앉힌 바 있다. 바이든 정부가 ‘공정경제’ 정책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눈길을 끈 대목은 그가 밝힌 공정경제 정책을 강화하려는 목적이다. 미 백악관 누리집에 올린
‘설명 자료’에 그 네 가지 목적이 담겨 있다. △미국 가정이 이용하는 각종 상품과 서비스 이용료 부담을 낮추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끌어올리며 △(미국 경제의) 혁신을 촉진해 일자리를 만들고 △빠른 경제성장을 위해 반독점 규제를 강화하려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민간 소비 여력을 키우고 경제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려는 경제정책 틀 속에 반독점 규제가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전략은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교수가 30대 후반에 오바마 정부의 대통령 수석 경제보좌관으로 일하며 동료와 함께 펴낸
‘대통령의 경제 보고서(2016)’에 바이든식 반독점 정책의 실마리가 담겨 있다. 2008년 금융위기 폭풍에서 벗어나 장기 저성장 시기를 관통하던 오바마 정부가 취해야 할 경제정책 방향을 탐구하고 제안한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금융위기와 이후 저성장을 불러온 핵심축을 소득·자산·기회의 불평등으로 보며, 이런 불평등의 원인으로 독점화 현상과 여기에 기반을 둔 만연한 ‘지대 추구’(rent-seeking) 행위를 짚는다. 당시만 해도 위기 극복 정책으로 재정·통화정책이 주목을 받던 터라 퍼먼의 분석은 적어도 국내엔 덜 소개됐지만, 퍼먼의 진단과 처방은 세월을 가로질러 바이든의 정책에 투영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듯싶다. 지대는 경쟁이 사라진 곳에 쌓인다. 행정명령에 서명한 직후 바이든 대통령이 에스엔에스(SNS)에 남긴 메시지(‘경쟁 없는 자본주의는 자본주의가 아니다. 착취일 뿐’)는 ‘지대가 넘치는 자본주의는 자본주의가 아니다. 착취일 뿐’이란 퍼먼식 변주도 해봄 직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논리 전개로 보이지만, 국내 사정에 비춰 보면 그렇지 않다. 우선순위에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역대 보수·진보정권 모두 ‘공정경제’는 정부 정책의 한 축을 이뤘다. 하지만 그 맥락은 바이든 혹은 오바마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국내에선 주로 ‘갑질 방지’ ‘재벌 군기잡기’와 같은 ‘정의 실현’이란 프레임 속에 공정 정책은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 게 사실이다. 공정거래위원회도 ‘경제 검찰’ ‘재벌 저승사자’와 같은 별칭에 은근히 우쭐해하며 조직의 지향점이 흐려진 것은 아닌가 싶다. 공정위는 사정기관이 아니지 않나.
물론 여기에는 한국 경제가 오랜 세월 소수 재벌그룹이 독식한 ‘특수한 현실’이 녹아 있고, 공정위도 조성욱 위원장 취임 이후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영입해 사정보다 경제 분석에 기반을 둔 정책을 펴려고 시도하는 등 변화의 조짐이 있지만, 시장의 변화 속도에 발을 맞추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의외로 공정위의 존립 이유와 공정 정책의 지향점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잘 정리돼 있다. 이 법 1조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창의적인 기업활동을 조성하고 소비자를 보호함과 아울러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돼 있다. 바이든 정부의 그것과 닮은꼴 아닌가.
국내 빅테크들이 외부인은
본질을 꿰뚫기 어려운 알고리즘과 재벌과는 다른 혁신 기업이란 우호적 여론을 등에 업고 새로운 시장 지배자로 발돋움하는 이즈음, ‘경쟁자’가 아닌 ‘경쟁’의 보호자로서
공정위의 위상 정립과 역할 확대가 절실하다.
sp96@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