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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공영방송, 창작자와의 파트너십 강화를

등록 2021-08-25 17:24수정 2021-08-26 02:32

[최선영의 미디어전망대]
다큐멘터리 ‘희망의 궁전 딜쿠샤’. 유튜브 갈무리
다큐멘터리 ‘희망의 궁전 딜쿠샤’. 유튜브 갈무리

친구가 2013년에 만든 <한국방송>(KBS) 다큐멘터리가 유튜브에 올라와 있었다. 무려 70만 조회수에 육박하는 이 다큐멘터리 제목은 ‘희망의 궁전 딜쿠샤’. 서울시의 딜쿠샤 원형 복원 결정과 등록문화재 지정에 기여한 작품이기도 하다. 당시 일회성으로 방송되어 아쉬움이 컸는데, 이제야 빛을 보나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작가인 친구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마지막 스태프 스크롤 자막 화면이 통째로 삭제되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누구인지, 감독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고맙다는 댓글도 꽤 많았으나 채널 관리자의 답글은 없었다. 게다가 한국방송 <다큐 공감>으로 방송되었던 이 프로그램은 엉뚱하게도 ‘케이비에스(KBS)여행 걸어서 세계 속으로’라는 유튜브 채널에 올라와 있었다. 올해 3월 복원을 마친 딜쿠샤 개관 기념으로, 이른바 ‘계기성 특집’으로 한국방송이 유튜브에 올린 모양이다.

혹시 제작진 스크롤 자막 삭제가 실수였을까 싶어 유튜브에 올라온 <인간극장> <한국인의 밥상> 등 한국방송의 대표 프로그램을 확인해보았다. 놀랍게도 뒷부분의 창작자 스크롤 자막 부분은 한결같이 편집되어 있었다. ‘희망의 궁전 딜쿠샤’는 만든 사람들의 이름을 모르는 프로그램이 된 것이다. 작년 7월 칼럼 ‘공영방송의 불공정한 ‘지식재산권 장사’’에서도 유사한 문제를 지적했는데, 1년이 지났음에도 크게 달라진 건 없는 듯하다. 공영방송인 한국방송은 유튜브 수익을 창작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정하게 배분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대한민국의 대표 공영미디어라면 창작자 권리보호의 기준을 만들고 실천해야 마땅할 텐데, 창작자 보호와 육성은 고사하고 어째서 제작진 이름을 일부러 삭제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물론, 법적으로 문제가 안 될 수 있다. 약자의 위치에 있는 제작사가 모든 저작권과 저작인격권의 방송사 귀속에 동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면 말이다. 방송사가 사소한 법적 분쟁마저 피하고자 성명 표시를 삭제했다 하더라도, 창작물을 대하는 한국방송의 인식은 퍽 실망스럽다. 불공정거래에 의해 저작권을 확보한, 과거의 콘텐츠 팔이에 매몰되어 새로운 프로그램과 창작자 발굴을 소홀히 하는 건 아닌지.

많은 방송 관계자들은 공영미디어 가치 강화를 주장하며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침공’을 우려하며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이 이들의 생산 하청기지가 된다든지, 의존이 높아진다는 등의 공포를 조성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콘텐츠들이 나날이 전세계인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기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텐가. 반대로 공영방송이 오랫동안 우수한 독립창작자들을 하청업자로 홀대한 것은 아닌가.

글로벌 오티티 사업자의 등장 이후 영상 창작자의 지식재산권 활용 기회가 다양해지고 있다. 초치기 제작, 파일럿 제작을 하던 기존 방송 제작 관행과 달리, 사전 전작제의 도입으로 계약 안정성과 완성도를 보장한 것도 큰 변화다. 지식재산권 활용이 중요해지는 요즘, 그래서 창작자와 대등한 파트너십을 맺는 플랫폼과 방송사에 우수한 창작자들이 몰린다.

콘텐츠를 단순히 고갈시키는 건 오래갈 수 없다. 공영방송이라면 과거 프로그램을 지렛대 삼아 새로운 스핀오프 콘텐츠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창작자 협업 모델, 수익 배분 파트너십을 획기적으로 고안해야 한다. 글로벌 플랫폼에 대응하려면 말이다. 원천콘텐츠로서 지식재산에 대해 가장 잘 알고, 다양하게 확장해갈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주체는 창작자다. 더 늦기 전에 창작자에 대한 인식을 전환해야 할 때다.

최선영 ㅣ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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