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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대장동 의혹을 즐겁게 관전하는 법

등록 2021-10-05 04:59수정 2021-10-05 16:35

[편집국에서]
김남영 공공연대노동조합 청년 조합원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경기도 성남 대장동 개발 관련 의혹의 철저한 수사와 불로소득 환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김남영 공공연대노동조합 청년 조합원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경기도 성남 대장동 개발 관련 의혹의 철저한 수사와 불로소득 환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신승근 정치에디터

대법관, 검사, 국회의원, 기자, 변호사, 그리고 그 가족과 자식까지 얽히고설킨 ‘대장동 의혹’에 분노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힘 좀 쓰는 이들이 불로소득을 챙기려 ‘이익 동맹’을 맺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온갖 사적 인연으로 끌고 당겨주며, 제 자식을 상층부로 부양하는 행태는 진보도, 보수도 예외가 없었다.

문재인 정부 초대 국방장관에 지명된 송영무 후보자는 법무법인 율촌에서 고용계약서도 쓰지 않고 다달이 3천만원씩 2년9개월 동안 9억9천만원의 자문료를 받고, 딸은 아버지가 근무하던 국방과학연구소에 취업한 게 드러났다. 송 후보자는 “그런 세계가 있어요.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기 조금 어렵죠. 일반 서민은…”이라는 유명한 어록을 남겼다. 여론은 들끓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그를 장관에 임명했다. 국회 국정감사 증인 채택을 무마해주는 대가로 딸을 케이티(KT)에 채용하도록 청탁한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항소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날조된 증거에 의해 판단된 잘못된 결과”라고 반발했다.

‘대장동 이익 동맹’에 참여한 이들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주주협약서에 초과이익 환수조항을 넣지 않아 화천대유에 4040억원의 배당이득을 안긴 대가로 수익금을 나눠 가졌다는 혐의에 ‘이혼 위자료 등을 빌린 것’이라고 발뺌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권순일 대법관을 여덟차례나 방문 면담한 걸 대법원 구내 이발관 이용 목적이라고 설명한 화천대유 소유주 김만배씨는 거론할 필요도 없다. 지도층을 자임한 이들의 일탈이 반복됐지만, 대장동처럼 대법관, 검사, 국회의원까지 한데 얽힌 이익 동맹의 실체와 그들의 민망한 민낯을 보여준 사례는 흔치 않다.

가짜 수산업자에게 포르셰 차량을 제공받아 국정농단 수사 특별검사에서 하차한 박영수 전 특검은 2016년 화천대유 법률고문으로 고문료를 받은 게 드러났다. 딸은 화천대유에 입사해 대장동 아파트까지 분양받았다. 김만배씨가 박 전 특검의 인척인 분양대행업체 대표에게 100억원을 전달한 의혹도 불거졌다. 수사를 통해 실체가 밝혀지겠지만, 이미 특검의 품위나 염치는 오간 데 없다.

권순일 전 대법관은 2020년 9월 퇴임 두달 만에 화천대유 고문으로 위촉돼 월 1500만원씩 고문료를 받았다. 논란이 확산하자 그동안 받은 고문료 1억5천만원을 기부하고 물러났다. 하지만 김만배씨가 수시로 대법원을 드나들도록 문을 활짝 열어줬고, 대법관 시절 ‘이재명 경기지사 무죄 판결’까지 의심받고 있다. 대법관의 위신과 명예도 땅바닥에 처박혔다.

곽상도 의원의 추락은 통쾌한 측면도 있다. 검사로 1991년 강기훈씨 유서대필 조작 사건에 관련됐다는 의혹을 받아온 그는 세상이 좀 더 정의로웠다면 일찌감치 공공의 시야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국회의원(대구 중·남구)으로 승승장구했다. 문 대통령 아들 준용씨의 ‘부당 이득’ 탐색에 집중해온 그가 자기 아들 문제엔 무심해 파국을 맞았다는 건 좀 우스꽝스럽다. 화천대유 대리로 6년 근무한 아들의 퇴직금 50억원을 “정당한 대가”라고 주장하는 모습은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50억원이 그를 향한 뇌물인지 낱낱이 밝혀 합당한 책임을 묻는다면 뒤늦게라도 정의가 실현되는 셈이니, 대장동 의혹이 촉발한 뜻밖의 소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이 제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대통령을 욕망하며 정치판에 뛰어드는 현실에서 절제는 무의미한 미덕일 수 있다. 그러나 ‘약탈정권 교체’(윤석열), ‘정의가 바로 세워진 나라’(최재형)를 외치며 정치에 발 디딘 두 사람 역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집이 없어서 청약통장을 만들어본 적 없다’는 말로 밑천을 드러내고, ‘왕’(王) 자로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선을 무속과 결합한 전제군주를 뽑는 무대로 퇴행시켰다는 조롱을 자초했다. 김만배씨의 누나가 윤 전 총장 아버지의 연희동 주택을 구매한 게 드러나 대장동 문제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 역시 수사로 밝혀야 한다.

집값, 전셋값 상승에 죽을 맛인 서민들이 수천억의 불로소득을 안긴 대장동 의혹에 평정심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욕망하는 대로 움직이다 추락하고 고전하는 이들을 통해 ‘절제의 미덕’을 깨친다면 꼭 불쾌지수가 높아질 일은 아닐 것이다.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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