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1980년대 전세계적 인기를 얻었던 미국 드라마 <댈러스>는 상류층의 거짓과 위선, 욕망, 도덕적 딜레마, 출생의 비밀 등 속물적 전형성과 비현실성을 고루 갖춘 저속한 드라마였다. 90여개국에 수출되어 ‘댈러스의 도배’라 할 정도로 뜨거운 성공을 거두지만 여러 나라에서 쓰레기 드라마가 할리우드 문화제국주의를 심화시킨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특히 주 시청층인 여성을 저질 연속극이나 보는 어리석은 대중으로 폄훼하는 비평이 주를 이뤘다. 1982년 네덜란드에서 초국가적 <댈러스> 현상을 관찰하던 대학원생 이엔 앙은 이 일방적 주장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 흥행 스코어에 드러나지 않는 시청자의 향유 심리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댈러스> 팬들에게 열광의 이유를 적어 편지해달라는 광고를 여성 잡지에 실었고, 이들의 답장을 받아 연구한다. 편지 분석 결과 앙은 이들이 ‘감정적 리얼리즘’과 ‘조롱적 시청’이라는 양면성을 갖고 있음을 발견한다. 드라마의 모든 스토리와 설정에 빠져드는 게 아니라 등장인물의 갈등, 행복, 사랑과 같은 공감 가능한 보편적인 감정에는 현실적 일체감을 느끼는 반면, 개연성 없는 줄거리와 설정에 대해서는 우월감을 느끼며 조롱적 시청을 즐긴다는 것이다.
앙의 연구 <댈러스 보기의 즐거움>(1985)은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집단 시청이 일어나고 있는 전지구적 시청공동체의 반응을 이해하는 데 통찰을 제공한다. 이제는 검색으로 무엇이든 알 수 있는 시대라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보고 있는지, 어떤 장면에 반응하는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놀랍게도 케이팝 현상에서 볼 수 있었던 유튜브 리액션 영상이 <오징어 게임>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전문 리뷰어뿐만 아니라 스페인 산골에 사는 농부부터 게이머까지, 다양한 국적·인종·성별·연령대의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보며 웃고, 울고, 놀라고 있었다. 긴장감 넘치는 공포가 엄습하면 얼굴을 가리고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이내 등장인물에 몰입해 이기기를 응원하는 모습이 나와 다를 바 없었다.
특히 자막 읽기를 극도로 싫어한다는 외국인들이 한국어판을 시청하는 경우가 많아 흥미롭다. 배우의 연기를 오롯이 감상할 수 있고, 더 오싹한 느낌이 든다는 이유로 한국어판을 ‘용기 있게’ 선택하는 유튜버가 많았다. 리뷰어가 한국어 대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 세계 각지의 <오징어 게임> 팬들이 왁자지껄 맥락에 대한 설명 댓글을 달아주고 있는 것도 독특한 현상이다. 일각에서는 한국어가 언어적 불편을 야기해 한류 확산에 걸림돌이라고 지적하지만, 한국어는 오히려 문화의 다양성의 폭과 깊이를 더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조회수가 높은 6편 ‘깐부’ 리액션 영상의 리뷰어들은 한결같이 오열과 침묵,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시청을 마무리하는데, 희한하게 본편보다 더 깊은 고통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래선지 온라인 공간에서는 “이 에피소드는 리액팅 커뮤니티를 초토화시켰다”, “이 에피소드를 보고 나면 다른 사람들의 리액션 비디오를 몰아 보게 된다”는 등의 글이 회자되고 있다.
미국의 한 리뷰어는 <오징어 게임>에 대해 “철저히 오락적인데 어떻게 날카로운 사회적 비판까지 담을 수 있는 건지…. 살면서 이런 시리즈는 처음 봤다”며 할리우드 콘텐츠와 완전히 다른 이야기 방식에 충격받았음을 고백했다. 익숙하게 느꼈던 ‘감정적 리얼리즘’과는 다른, 아마도 ‘사회적 리얼리즘’이라는 새로운 각성이 일어났기 때문 아닐까.
최선영ㅣ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