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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제퍼슨의 두 얼굴을 보여주다

등록 2021-11-04 16:09수정 2021-11-05 02:33

[나는 역사다] 샐리 헤밍스 (1773(?)~1853)
샐리 헤밍스 (1773(?)~1853)
샐리 헤밍스 (1773(?)~1853)

미국이라는 나라를 세울 때 토머스 제퍼슨이 큰일을 맡았다. 영국 정부에 맞서 사상과 논리를 개발하는 일은 제퍼슨의 몫이었다. 오늘날 민주주의 이념도 제퍼슨에게 빚을 진 셈이다.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제퍼슨이 썼다. 선언서 초안에는 노예 제도에 대한 비판도 있다. 지구 반대편의 사람을 잡아다 노예로 사고파는 일에 영국 정부의 책임이 있다고 공격한다. 그런데 의회 비준 과정에서 이 구절이 빠졌다고 한다. 노예 제도에 대해서는 미국의 백인들 역시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의 주인공은 제퍼슨이 아니다. 샐리 헤밍스라는 노예 사람을 나는 소개하겠다. 우리에게 낯선 이름이다. 제퍼슨의 아내가 결혼할 때 몸종으로 데려왔다. 그런데 샐리 헤밍스는 제퍼슨 아내의 이복동생이기도 하다. 제퍼슨의 장인이 여성 노예에게서 얻은 딸이었다. 당시 여성 노예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짐작하게 하는 복잡한 상황이다.

제퍼슨의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헤밍스는 제퍼슨의 집안일을 돌보았다. 또한 여섯명의 아이를 낳았다. 이 아이들의 아버지가 누구일까? 이 문제를 놓고 오랫동안 논쟁이 있었다. 제퍼슨은 존경받는 지도자였다. 제퍼슨의 지지자들은 아이들의 아버지가 제퍼슨일 리 없다고 200년 동안 주장했다. 제퍼슨을 헐뜯으려는 가짜 뉴스 정도로 치부했다.

오랜 논쟁이 끝난 것은 유전자 검사 덕분이었다. 샐리 헤밍스 아이들 후손의 유전자와 제퍼슨 집안의 유전자를 비교했다. 검사 결과가 나온 날이 1998년 11월5일이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토머스 제퍼슨이 맞았다. 제퍼슨과 헤밍스가 인종을 뛰어넘는 사랑을 했다고 봐야 할까? 하지만 제퍼슨의 태도는 실망스럽다. 자기가 아이들의 아버지였음을 인정한 일이 없고, 죽기 직전에야 이들을 노예 신분에서 풀어주었다.

윌리엄 웰스 브라운은 1853년 <대통령의 딸>이라는 소설을 썼다. 헤밍스의 가상의 딸이 주인공이다. 역사적 사실보다 상상에 기초했고 소설 자체는 그냥 그런데, 작가가 탈출한 노예라는 점은 눈길을 끈다. 한국어판은 번역과 부록이 퍽 정성스럽다. 책을 구하기 어려운 점은 아쉽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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