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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국회가 ‘사회적 타살’ 공범이 되지 않으려면

등록 2021-11-09 04:59수정 2021-11-09 16:08

[편집국에서] 최혜정 ㅣ 정치부장

한국 사회에는 정치인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마법의 질문이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일종의 ‘모범답안’도 있다. “사회적 합의를 먼저 이뤄야 한다. (그러니, 지금은 아니다!)” “원칙적으로는 찬성한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지난 5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선출되면서 차기 권력 창출을 향한 여야의 레이스가 시작됐다. 이번 대선의 특징은 ‘응징’이다. 거대 양당은 상대 후보를 감옥에 보내겠다는 ‘전의’로 불타오른다. 제3지대를 표방하는 후보는 ‘둘이 똑같다’고 싸잡아 비판한다. 비호감과 증오. 이번 대선을 가로지르는 열쇳말이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에 대해선 모호하거나 부정적이거나, 어쨌든 ‘지금은 아니다’라는 결론에 다 함께 이른다. 차별금지법에 대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8일 기독교계 인사들과 만나 “일방통행식 처리는 바람직하지 않다. 충분한 논의를 통해 국민적 합의에 이르러야 된다”고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차별금지법을 세게 시행하는 바람에 회사 경영진이나 동료 직원의 선택의 자유가 제한된다면 차별은 없어진다. 그런데 일자리도 없어진다”고 했다. 대선에 출마한 후보 중 차별금지법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이는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유일하다.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서 유승민·윤석열 후보는 20대 남성의 표를 얻어보겠다며 여성가족부 폐지,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 등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홍준표 의원은 차별금지법에 대해 “동성애를 합법화시키는” 법이라고 주장했다. 소수자를 배제하는 혐오의 에너지를 정치적 동력으로 삼은 행태다.

차별금지법은 성별, 인종, 종교, 장애,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다. 차별금지법에 모두가 미적대는 데는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금지 조항을 놓고 보수 기독교계의 반발을 버티기 어렵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차별금지가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방해한다’는 재계의 반대 논리도 강하다.

하지만 국회가 ‘사회적 합의’를 내세우며 차별금지법을 뭉개온 지 벌써 15년째다. 2007년 노무현 정부의 국정과제로 시작됐고, 17대 국회 이후 8차례 발의가 진행됐음에도 이 기간 동안 국회 안에서 제대로 된 아무런 논의가 진행되지 않은 책임은 거대 양당에 있다. 올해로 그 ‘흑역사’에 한해가 더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는 국민 10만명의 동의를 얻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청원’이 올라와 있다. 또 장혜영 정의당 의원, 민주당의 권인숙·이상민·박주민 의원이 각각 발의한 4개의 차별금지법, 평등법도 계류 중이다. 하지만 국회가 차기 권력 창출에 매달려 있는 사이, 국민청원안은 심사기한 만료를 눈앞에 두고 있고, 의원들의 안은 한번도 심사 테이블에 올라오지 못했다.

정치권이 주장하는 ‘사회적 합의’는 어느 정도 이뤄진 것 같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2020 차별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9명꼴로 차별금지와 평등권 보장을 위한 법률 제정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7.7%가 “성별, 장애, 인종, 성적 지향 등 다양한 종류의 차별을 금지하고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민주당은 최근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국민의힘에 토론회를 제안했다. 어쨌든 뭐라도 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다만 국민의힘을 향한 ‘논의’ 요구가 자칫 야당 핑계 대고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전략일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찬성하면 당론으로 정해 추진하고, 반대한다면 이유를 대고 설득하는 것이 책임정치다.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존엄성을 인정받는 것은 헌법에 규정된 기본권이다. 헌법대로 안 되고 있으니 적어도 우리 사회가 용인할 수 없는 혐오와 차별의 기준을 세워보자는 게 차별금지법의 취지다. 혐오의 가장 큰 효과는 소수자를 눈앞에서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국회가 차별금지법을 외면하는 사이, 법과 제도의 출구 없이 스러져가는 소수자들이 여럿이다. 국회는 ‘사회적 타살’의 공범이라는 오명을 계속 이어갈 것인가. 선택할 시점이다.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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