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신승근
정치에디터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14일 페이스북에 “문재인 정부의 청년정책은 역대 정부와 대비했을 때 일자리 정책을 포괄하며 ‘청년의 삶 전반을 보듬는 보편적·포괄적 정책으로 전환’하였다”며 “문재인 정부(17.5 이후)에서 새롭게 시작한 청년정책은 185개에 달하며, 예산도 32개 부처 23.8조원으로 성장하였다”고 밝혔다. 그는 “청년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문재인 정부의 청년정책을 설명하는 것이 자칫 ‘물정 모르는 소리’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면서도 “우리의 노력과 현실을 정확히 정리해야 다음 정부의 출발점이 정해질 수 있다는 진심에서 글을 기록한다”고 적었다.
여야 모든 대선 후보가 전쟁 같은 삶을 사는 청년의 현실을 거론하며 20·30세대를 겨냥한 공약을 쏟아내는 현실에서 박 수석의 글은 뜬금없게 느껴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선을 다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건 알겠다. 하지만 삼포(연애·결혼·출산 포기), 오포(+집·경력 포기)를 넘어 ‘엔(n)포 세대’로 불리는 청년들에겐 ‘큰물 흐려놓고, 작은 것 몇개 잘했다’는 변명처럼 비칠 수 있다.
보수 세력의 잘못도 크다.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이어 세번째 ‘민주정부’를 구성한 문재인 정부에 제일 큰 책임을 지울 수밖에 없다. 지난해 4·15 총선에서 범여권에 183석의 압도적 의석을 몰아줬고, 386세력은 주역을 넘어 기득권 세력이 됐다. 그런데 빈부격차, 정규직·비정규직 문제는 심화하고 절망한 청년들은 “이념 그딴 것 다 필요 없고, 나한테 이득이 되는 정부를 달라”고 외치는 현실이니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 대통령에게 지난 5년 무엇을 이뤘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대통령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조국 사태’로 586의 위선도 드러났다. ‘집값의 배신’은 무엇보다 크고 깊은 상처를 남겼다. 내 주변에서 20년 이상 성실하게 일했지만 아파트를 사지 못하거나 안 산 이들은 울분에 찬 나날을 보낸다. “집값 폭등만으로 문재인 정부는 심판받아야 한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물며 이제 막 기반을 잡으려는 청년들에게 치솟은 집값은 건널 수 없는 태평양, 넘을 수 없는 만리장성이다. 오죽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조세원칙을 허물면서까지 “이 길(가상자산 시장 확대)을 열어서 청년과 사회 취약계층이 새로운 투자 기회와 자산형성 기회를 가지도록 하자”며 가상자산 과세유예를 주장하고 나섰겠는가.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며 다시 등판한 김수현, 불평등 해소와 경제정의를 위해 평생 힘썼다는 장하성과 김상조 등 3명의 청와대 정책실장은 ‘실패의 아이콘’이 됐다. 그들의 ‘실력 부족’이 정권교체 열망에 불을 댕긴 가장 큰 불씨를 제공했다.
절치부심한 검찰개혁은 어떤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출범했다. 작지 않은 진전이다. 그런데 부작용이 발생했다. 검찰총장 출신이 정치에 발을 들이고, 본인 아내와 장모가 수많은 의혹에 휩싸여도 지지율 1위를 달리는 한편의 누아르가 펼쳐졌다. 만약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검찰개혁이 개혁 대상에게 권력의 정점에 이르는 길을 열어준 아이러니가 현실화한다. 그를 중용하고 초고속 승진시켜 제1야당 대선 후보로 부양하는 데 문 대통령의 책임은 어느 만큼인지, 솔직한 생각을 듣고 싶다.
문 대통령이 오는 21일 ‘국민과의 대화’를 한다. 좀 억울해도, 국민을 시장의 패배자나 투기꾼으로 만든 부동산 정책, 절망하는 청년과 추락하고 끼이고 깔려 죽는 노동자, 구호만 남은 ‘평등 공정 정의’, 소속 단체장의 성추행 의혹 때문에 치러진 ‘4·7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고 부산 가덕도 앞바다에서 신공항 건설을 약속한 일과 균형발전을 외쳤지만 정작 서울·수도권 집중을 심화한 오류 등에 대한 진솔한 얘기를 듣고 싶다. 한국갤럽 등 많은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 응답이 ‘정권유지’를 압도한다. 이재명 후보가 아무리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사과해도 문 대통령 스스로 과오를 인정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지 못한다면, 내년 3월9일 대선은 더욱 힘겨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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