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독립할 때만 해도 미국은 지금처럼 강대국이 아니었다. 영토도 지금 미국 땅의 동쪽 바닷가뿐이었다. 서쪽 땅에는 아메리카 원주민이 살았고, 프랑스와 에스파냐가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했다. 그러다가 1803년에 미국 정부는 프랑스 정부에 돈을 주고 루이지애나 땅을 샀다. 그때 미국 대통령은 토머스 제퍼슨이었다. 새로 산 땅을 알아야 했다. 또 과학적인 관심도 있었다. 만능 지식인 제퍼슨은 소문난 ‘고생물 덕후’이기도 했다. 메리웨더 루이스와 윌리엄 클라크가 사람들을 모아 탐험을 떠났다. 미국 역사에 유명한 루이스와 클라크 탐험대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백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자연이 낯설었다. 에스파냐 사람들은 탐험대가 자기네 영토를 침범했다며 추격대를 보내기도 했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지만 가끔 자기들끼리 전쟁을 벌이기도 했는데, “너희는 누구 편이냐”며 싸움의 틈바구니에 끼여 탐험대가 난처한 지경에 처한 일도 있다.
원주민 여성 새커거위아의 도움 없이는 탐험이 더욱 어려웠을 터이다. 그 남편은 투생 샤르보노, 원주민 이로쿼이 사람과 프랑스 사람의 후손이었다. 태어난 지 백일도 안 된 아들을 업고 새커거위아 부부는 탐험대에 합류했다. 새커거위아는 통역을 맡았다. 평화의 상징이기도 했다. 갓난아이를 업은 원주민 여성을 보고, 싸움하던 원주민들도 의심과 오해를 누그러뜨렸다. 루이스와 클라크 탐험대가 서부를 가로질러 태평양에 닿은 날이 1805년 11월19일이라고 한다.
새커거위아는 탐험대의 의사 결정 투표에도 참여했다. 100여년 후 미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이 주목한 인물이기도 하다. 21세기에는 미국 동전에도 등장했다. 엄마 등에 업혀 대륙을 가로지른 아들 장 밥티스트 샤르보노는 커서도 모험가로 살았다. 유럽에 가서 살다가 미국에 돌아와 서부 개척단에도 참여했는데, 백인 선교사들이 아메리카 원주민을 대하는 본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개척단을 그만둔 일화가 있다. 평화와 화해라는 새커거위아의 유산이 미국 역사에서 뒷전에 밀렸던 일이 나는 안타깝다.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