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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형님 대선 유감

등록 2021-12-15 19:59수정 2021-12-16 13:26

[편집국에서] 최혜정 | 정치부장

매일 아침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공보단은 담당 기자들에게 ‘형, 어디 가?…석열이 형 일일 통신’을 공지한다. 윤석열 후보의 주요 일정과 후보 동선에 담긴 의미, 간단한 현안 브리핑이 담겨 있다. ‘석열이 형’은 검찰총장 출신이라는 딱딱하고 권위적인 이미지를 내려놓고자 하는 윤 후보의 ‘부캐’다. 다만 이 형이 친해지고 싶은 대상은 명확하다. 그를 ‘형’이라 부를 수 있는, (젊은) 남성들이다. 윤 후보보다 열댓살 어린 나는 그를 ‘오빠’라고 부를 일도 없지만, ‘형’이라 부를 일은 더더욱 없다. 의문의 1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4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청년 세대는 기회를 얻기 위해서 동료, 친구들 또는 ‘여자 사람 친구’와 격렬하게 경쟁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청년은 여사친을 둔 ‘남성’이다. 요즘엔 잊을 만하면 이른바 ‘남초 커뮤니티’를 방문한다. 얼마 전 ‘이준석 열풍’의 본진에서 표심 구애에 나섰다가 하루 만에 글이 삭제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래도 이 후보 쪽에선 관심 끄는 데 성공했다며 ‘험지 순례’를 이어갈 태세다. 이쯤 되면 다정도 병이다.

이번 대선에서 희한한 풍경이 여럿이지만, 주요하게 눈에 띄는 것은 유력 후보와 소속 정당이 보이는 여성을 향한 태도다. 첫번째는 ‘없는 사람 취급’이다. 2030세대의 흔들리는 마음을 잡고 싶은 건 이해하지만, ‘형’을 자임하고 ‘청년=남성’이 무의식중 튀어나오는 후보들의 시선에 여성은 포함되지 않는 것 같다. 특히 디지털 성착취물 재유포를 막자는 취지의 ‘엔(n)번방 방지법’을 ‘검열법’으로 되치기하는 윤 후보를 보면, 내년 대선은 20대 ‘일부 남성’들만으로 치를 생각인지 붙잡고 묻고 싶다.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춰달라’는 글을 “읽어볼 만한 글”이라며 공유하는 이 후보의 성평등 인식도 의심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성차별을 젠더 갈등으로 호도해선 안 된다.

두번째는 ‘혐오’다. 윤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 논란이 한창이다. ‘공정과 상식’을 내걸고 제1야당의 대선 후보가 된 윤 후보다. 주가 조작, 논문 표절, 허위 이력 등 김씨에게 제기된 의혹과 해명은 ‘공정’의 가치에 어긋난다. 철저한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김씨가 유흥업소 접객원 ‘쥴리’로 일했다는 주장은 여성 혐오가 어떻게 정치적 동력으로 활용되는지를 보여준다.

한 80대 체육인은 24년 전 어느 날 밤의 풍경을 마치 어젯밤 일처럼 증언하고, 한번 봤다는 ‘그 여성’이 김씨라고 단번에 지목한다. 당장 어제 점심때 뭘 먹었는지도 가물가물한 ‘저질 기억력’ 소유자로선 그의 초인적인 기억력에 경외심마저 느껴진다. 전직 의원과 현직 검사는 김씨의 고교 졸업앨범 사진을 소환해 “눈동자가 엄청나게 커졌다”느니 “여성적 매력과 자존감을 살려주는 성형수술로 외모를 가꾼 좋은 사례”라고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언론인 출신의 국회의원은 김씨를 겨냥해 “인생이 성형”이라고 주장하더니, 확인되지 않는 전언까지 동원해 ‘비하’에 열을 올린다. 김씨가 유흥업소에서 일했는지는 확인된 적도 없지만 그의 과거 사생활이 왜 밝혀져야 하고 비난받아야 하는지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른바 ‘쥴리’ 논란의 기저에는 젊은 여성이 ‘육체 자본’을 무기로 삼아 권력자 곁을 차지하고 있다는 편견이 깔려 있다. 가부장 정서를 바탕으로 한 전형적인 ‘꽃뱀 서사’다. 남성에게는 좀체 붙지 않는 ‘외모 평가’가 따라붙는 이유다. 윤석열 후보를 끌어내리기 위해 여성 배우자를 능멸하고 혐오를 노골적으로 동원한다.

이 순간에도 여성들은 데이트 폭력으로 맞아 죽거나 스토킹 범죄로 죽어간다. 디지털 성착취 영상이나 리벤지 포르노로 ‘죽고 싶은’ 마음을 품고 사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노동과 돌봄의 이중 부담에 허덕이다 코로나19로 돌봄 공백을 메우지 못해 일을 그만둔 이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엄마들을, 나는 최소 5명의 이름을 곧바로 댈 수 있다.

조직화되지 않았다고,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없는 존재’인 것은 아니다. 내년 3월9일 밤이 되면 확인될 것이다.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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