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엄수된 매헌 윤봉길 의사 순국 89주기 추모식에서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의 추모사를 듣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편집국에서] 길윤형 | 국제부장
그동안 나이 들며 여러 대선을 경험했지만, 이번만큼 절망스러운 선거는 없었다고 단언한다. 자신이 쏟아낸 공약을 취소할수록 지지율이 오르는 후보와 현 정부에 대한 ‘복수 달성’이 유일한 출마 이유로 보이는 후보 간의 대결은 ‘정책’이 아닌 가족을 둘러싼 추문 공방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화끈한 폭로전 속에서 진지한 정책 논의가 얼마나 주목받을지 알 수 없으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너무나 혼란스럽기에 ‘의미 있는 토론’이 오갔으면 하는 쟁점 몇가지만 갈무리한다.
첫째, 우리의 유일한 동맹인 미국은 현재 ‘두개의 전선’에서 어려운 대결에 직면해 있다. 하나는 중국과 맞서는 대만해협, 다른 하나는 러시아와 맞서는 우크라이나 전선이다. 대만해협과 관련해 중국이 정말 ‘수년 안에’ 대만을 침공할지에 대해선 누구도 똑 부러진 답을 내놓지 못한다. 하지만 통일을 해야 ‘위대한 중국의 꿈’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오판’을 내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수 있다고 보고, 각각의 경우에 대비한 시나리오를 마련해둬야 한다.
이웃 일본은 지난 4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언급한 뒤, 대응책 마련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새어 나오는 △국가안전보장전략 개정 △적기지 공격 능력 확보 △방위예산 확대 등이 모두 다 ‘대만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일본 자체의 군사적 역량을 강화해 미-일 동맹을 업그레이드하고 그 힘으로 대중 억지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한국 역시 5월 한-미 정상회담 때 ‘대만해협’을 언급했지만, 그 직후 ‘일반론적 언급일 뿐’이라며 의미를 깎아내렸다. 이와 관련해 유일하게 관찰되는 의미 있는 움직임은 경항모 보유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집착이다. 지난 3일 경항모 예산은 정부안대로 71억8800만원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문재인 정부가 공언한 대로 2033년 3만t급 경항모 전력을 확보하게 되면, 미국은 대만 유사 사태가 발생했을 때 이 전력을 활용해 한국이 군사적 기여를 해주길 요구할 것이다. 일본은 이미 현재 보유한 2만t급 경항모 두척을 동원해 동중국해, 남중국해를 넘어 인도양까지 가 미국과 연합훈련을 한다. 어쩌다 보니 갖게 된 경항모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놓고 국론은 살벌하게 양분될 것이다. 우리가 대만 사태 때 경항모를 동중국해 먼바다에 띄워놓고 미군을 ‘후방지원’하겠다는 각오가 없다면 이 사업은 그만두는 게 좋다.
둘째,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다. 15일 <동아일보>에 실린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의 인터뷰를 보고 기함을 금할 수 없었다. 한-미는 2015년 11월 ‘시기’가 아닌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을 하기로 합의했다. 그는 한국이 조건을 갖출 수 있는 시점을 무려(!) “2028년쯤”이라 예측했다. 주한미군은 중국의 턱 앞에 솟아 있는 날카로운 흉기이고, 한국군은 세계 6~7위선으로 성장한 강군이다. 미국 조야에 미-중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잡기를 시도하는 한국을 ‘동맹의 틀’ 안에 잡아두려면 전환 조건을 까다롭게 해 결국 무산시키는 게 좋겠다는 암묵적 합의가 존재하는 게 아닌가 의심한다. 이 상황을 받아들일 것인지 진통을 감수해가며 ‘조건’이 아닌 ‘시기’에 따른 전환으로 합의를 수정할지(쉽지 않을 것이다) 결정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조건’을 맞추려 한없이 국방비만 늘렸다.
마지막은 지난 요소수 사태 때 분명해진 ‘경제안보’ 문제이다. 미국은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내년 초 ‘인도·태평양 경제 틀’을 만들 계획이다. 이 구상은 한국이 얼마 전 가입 의사를 밝힌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을 대체하려 짜낸 고육책이다. 이 틀로 인해 시피티피피 가입의 의미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노련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고 마지막. 두 후보가 쏟아내는 얘기를 아무리 들어도 지엽말단적 얘기들일 뿐 대한민국을 어떤 나라로 만들어가겠다는 것인지 큰 그림을 알 수 없다. 찢긴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가치’와 진지한 대국관(大局觀)을 제시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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