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돈 룩 업>에서 남녀 주인공이 뉴스쇼에 출연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재미있는 영화 한편을 보았다. 블랙코미디답게 유쾌하고, 서슬 퍼런 풍자가 너무 현실적이어서 슬픈 영화였다. 애덤 매케이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돈 룩 업>.
천문학 전공의 교수와 대학원생으로 나오는 남녀 주인공은 어느 날 지구를 향해 빠른 속도로 돌진하는 혜성을 발견한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6개월 뒤 지구와 충돌해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는 엄청난 사실도 함께 알게 된다. 주인공이 이를 백악관과 언론에 알리는 곡절 많은 분투 과정에서 신랄한 현실 풍자가 계속된다. 지구 파멸을 앞둔 절박한 상황 앞에서도 눈앞의 선거와 정치적 위기 해결에만 몰두하는 정치권, 행성 충돌을 수백조원에 달하는 광물자원의 획득 기회로 계산하는 아이티(IT)업계의 거물, 아이비리그 명문 대학이 아니라며 주인공을 깔보는 속물적 관료에 이르기까지, 영화에 등장하는 인간은 모두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부족해 보인다.
뼈아픈 현실 풍자 중에서도 매스미디어와 소셜미디어가 뒤엉킨 미디어 생태계에 관한 감독의 독설이 유독 마음에 남았다. 시청률을 견인하는 가십성 연예 기사가 지구 멸망보다 수천배는 더 중요한 뉴스쇼는 애당초 진지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주인공을 출연시킨 이유는 인류 멸망이라는 내용 자체가 자극적인 소재이기 때문이다. 이를 간파한 여자 주인공이 프로그램 도중 격분하지만, 이 장면은 인터넷 ‘밈’이 되어 도리어 여자 주인공을 조롱의 대상으로 만든다. 영화 속의 미디어 생태계는 24시간 뉴스와 정보를 쏟아내지만 경박하고 말초적인 뉴스만이 확대 재생산되는 공간이다. 매스미디어는 성적 스캔들처럼 말초적인 뉴스를 쫓는 데 앞장서고, 대중은 소셜미디어에서 ‘짤’이나 패러디 만들기에만 열중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상승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선정적인 가짜뉴스를 생산해내는 생태계에서 인류 미래를 고민할 진지한 뉴스는 설 자리가 없다. 지독한 풍자는 엔딩 크레디트가 끝나고 난 뒤 인류 멸망에서 살아남은 최후의 1인이 가장 먼저 한 일을 보여주는 쿠키영상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영화가 그리는 것처럼 뉴스와 정보 교란의 미디어 생태계는 매스미디어와 소셜미디어의 합작품이다. 예를 들어 가짜뉴스 확산 메커니즘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유튜버 등 1인 미디어가 생산한 터무니없는 가짜뉴스라 할지라도 정치인이나 언론의 인용을 통해 뉴스 유통 과정에 편입되고 나면 어엿한 정보로 간주돼 확대 재생산된다. 이는 근래 대선 보도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클릭수와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서슴지 않는 뉴스 생태계가 우리의 미래 비전을 진지하게 고민할 공간을 잠식해버리는 것이다.
내년이 되면 대선 관련 보도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인지 미디어의 공적 책무를 가리키는 ‘어카운터빌리티’(accountability)가 떠올랐다. 그동안 이 말은 ‘미디어’의 설명 책임을 강조하기 위한 용어로 자주 사용됐다. 공영방송 등 주류 언론에 부과되는 공적 책임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돼왔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이 주류 미디어는 물론 유튜버 등 1인 미디어 활동가를 비롯해 뉴스와 정보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대중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가 갖추어야 할 시민적 자질과 덕목을 가리키는 용어로 확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유와 책임 사이의 조화로운 균형을 갖춘 ‘책무성을 갖춘 참여’만이 ‘포스트 진실’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정신이기 때문이다.
한선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