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왼쪽)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28일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열린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지방소멸대응 특별법안 국회발의 간담회’에 참석해 나란히 앉아 있다. 공동취재사사진
[편집국에서] 이주현 ㅣ 이슈부문장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배우자인 김건희씨가 대학 강사 임용 신청 서류에 경력을 거짓 기재한 사실이 드러난 직후, 한 동료 기자가 에스엔에스(SNS)에서 ‘현기증’을 호소했다. 김씨의 사례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배우자 정경심씨의 자녀 대입 서류 위조 의혹을 비교하면서 네가지 조합을 열거했다. 1)정씨를 비판하던 사람들이 김씨에겐 관대하거나 2)정씨를 방어하던 사람들이 김씨에겐 분노하거나 3)정씨와 김씨 모두를 비판하거나 4)정씨나 김씨 모두에게 관대한 상황. 논리적 일관성 측면에선 3)이나 4) 범주의 사람들이 많아야 할 텐데, 현실에선 1)이나 2)가 대부분이라는 것이 그가 어지럼증을 느낀다고 한 이유였다.
나도 어지럽다.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두 대선 후보의 주변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이 경쟁적으로 쏟아져 나올 때 어질어질하다. 그런데, 신기한 건 두 사람의 지지율 그래프는 풀이라도 먹인 듯 오르내림이 적다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지지율이 쭉쭉 빠질 사건이 벌어져도, 두 사람 모두 지지율 급락 없이 대체로 오차범위 이내 격차를 보이는 흐름이다. ‘역대 최악의 비호감 선거’ ‘정답 없는 출제 오류 선거’라는 한숨과 비아냥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두 거대 정당이 양쪽 극단에 놓인 자신의 지지자들을 그러모아 ‘영끌 방어’ 하는 진영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방증일 터이다.
물론 비호감 선거, 진영 선거는 과거에도 반복됐지만 이번 선거와 양상이 달랐다. 2007년 대선 역시 유례없는 비호감 선거였으나 압도적인 보수 우위 구도로 전개돼 경쟁이 별 의미가 없었고, 2012년의 경우엔 박근혜-문재인 지지자가 서로 “정답이 두개”라고 외치는 치열한 포지티브전에 가까웠다. 대통령 탄핵 직후 치러진 2017년 대선은 궤멸 상태에 이른 보수의 위기가 고스란히 노출된 선거였다.
2022년 상황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그만큼 유권자들은 난감하다. 윤석열 후보는 자신의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채 반문 정서만 자극하고 있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문재인 정권 초반부의 적폐청산 기조가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을 우려하고 있다. 대다수 유권자들은 그동안 지지해온 정당의 후보를 흔쾌히 찍을 만한 정서를 공유하지 않은 채 진영 대립의 네거티브 에너지가 활활 타오르는 국면에 놓여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집권 세력 책임이라는 지적에 반박할 민주당 국회의원 있으면 나와보시라. 부동산으로 대표되는 무능, 지지자만 챙겨온 협량함과 오만이 빚어낸 결과다.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팬심도 확인받았고 청와대 행사에도 여러번 초청됐던 최백호가 “잘한다 잘한다 했더니 너무 나간다. 이쁘다 이쁘다 했더니 진짜인 줄 아네”(‘마 쫌’)라고 노래한 건 다 이유가 있다.
여야 두 유력 후보가 의회를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0선’이라는 점도 우려를 더한다. 그렇잖아도 성과와 속도에 익숙한 두 사람으로선 사회·정치·경제적 갈등을 조정해나가는 정당과 국회의 역할을 비생산적인 활동으로 받아들일 공산이 크다. 더욱이 반대편을 향한 감정적 배타성을 동력 삼아 집권한 정부라면, 갈등 조정보다는 적대감을 증폭시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 해악은 시민 개인들에게로 전가된다. 정치학자 박상훈의 지적처럼, 특정 대통령을 둘러싼 맹목과 혐오의 사회에선 “시민의 평화로운 내면과 자율적 삶의 가치”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 “사나운 정치는 사나운 시민을 만든다.”
비관적 전망을 덜 수 있는 방법이 뾰족하진 않아 보인다. 후보들이 ‘열정적 소수자’만 바라보지 않고 유권자들의 합리성에 반응할 수 있도록, 후보의 자질을 매의 눈으로 살피고 평가하는 일이 우선일 것 같다. 막막하다면, 오늘(30일) 10주기를 맞은 ‘영원한 민주주의자’ 김근태의 말을 나침반 삼아 나아가보자. “2012년을 점령하라”를 유언으로 남겼던 그는 마치 2022년을 앞둔 유권자들의 심정을 내다보기라도 한 듯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희망을 의심할 줄 아는 진지함, 희망의 근거를 찾아내려는 성실함, 대안이 없음을 고백하는 용기, 추상적인 도덕이 아닌 현실적인 차선을 선택해가는 긴장 속에서 우리는 다시 희망을 찾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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