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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당신의 ‘청년’은 누구입니까”

등록 2022-01-24 19:12수정 2022-01-25 11:58

지난해 11월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전국 38개 청년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2022 대선청년네트워크’ 출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지난해 11월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전국 38개 청년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2022 대선청년네트워크’ 출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편집국에서] 최혜정

정치부장

이사를 앞두고 묵은 짐을 정리하다보니 대학 시절 사진 등 온갖 ‘유물’이 베란다 창고 구석에서 쏟아져 나왔다. 모두 버리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막상 볼이 통통한 20대의 나와 마주하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져서 슬그머니 이삿짐 한쪽에 밀어넣고 말았다.

사진과 함께 봉인해제된 ‘그 시절’을 돌아본다. 반지하 월세방에서 벗어나 ‘햇볕 잘 드는 전셋집’에 살고 싶었다. 하자 수리 명목으로 집주인이 수십만원을 보증금에서 빼갔는데 내 잘못은 아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월급을 미루던 학원 원장을 생각하면 지금도 분하다. 불안은 고정값이었다.

여야 대선 후보들의 ‘무속’, ‘녹취록’ 논란으로 혼란스럽지만, 그래도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청년’으로 수렴되는 분위기다. 특정 후보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 2030세대에게 구애하는 공약들이 쏟아져 나오고, 각 후보는 자신이 ‘청년의 대변자’라고 자부한다. ‘가상자산 투자수익 5000만원까지 비과세’ ‘게임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병사 월급 200만원’ 등은 이름을 가리면 누구 공약인지 알 수도 없다. 청년의 주거 안정을 강조하면서 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집값의 10% 또는 20%만 있으면 집을 살 수 있게 해주겠다고도 밝혔다.

여야는 청년의 주요 관심사를 반영한 정책이라고 설명한다. 다만 나는 궁금하다. 코인 투자로 수천만원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청년이 그렇게 많을까. 집값의 10~20%만 있으면 집을 살 수 있도록 해준다는데, 사회초년생들이 그 10%는 마련할 수 있을까. 집을 사고는 싶어할까. 게임 정책이 청년의 삶을 개선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하는 걸까. 그러다보면 마지막 질문에 다다른다. 정치권이 호명하는 청년은 대체 누구인가.

양승훈 경남대 교수는 <문턱의 청년들>(공저)에서 “(서울) 마포구 반경 5㎞ 이내에만 청년들이 존재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썼다. 청년 담론이 서울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대기업·공기업 등 이른바 ‘표준 취업경로’를 밟는 청년에 국한돼 있다는 것이다. 이 경로를 밟지 않고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85~90% 청년은 주목되지 않는다. 지역에 살며 지역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청년, 특성화고 졸업생처럼 값싼 노동 취급을 받으며 차별과 무시를 받는 청년들은 대선에서 관심 밖이다. <한겨레>가 운영 중인 ‘청년 5일장’ 토론글에는 주거 환경 및 전월세 정책 개선, 임대시장 불공정행위 근절에 대한 요구가 넘쳐난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이번 선거운동은 청년들과 함께한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선언하며 내세운 것은 ‘여성가족부 폐지’와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였다. 여성 청년의 자리는 어디에 있나.

전국 38개 청년단체가 모인 ‘2022 대선청년네트워크’는 지난해 11월 출범식에서 후보들을 향해 “당신의 청년은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진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신문배달, 음식점, 편의점 등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플랫폼 배달일을 한다는 조아무개씨는 하루 종일 전기자전거를 타다가 허리디스크를 얻었다. 고객·점주의 갑질에 시달리지만, 노동권리는 보장받지 못한다. ‘살기 위해 서울로 내몰린다’는 지역 청년, 깡통전세 피해 등 세입자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청년,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는 고졸 청년의 호소가 이어졌다.

청년의 얼굴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정치가 손 내밀어야 하는 대상은 위험한 현장에 하청노동자로 내몰리는 ‘김용균’들이고 안정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초단시간 노동, 플랫폼 노동 등 불안정 노동시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청년이어야 한다. 이렇게 일해도 ‘지옥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청년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고 외치는 청년 공약은 공허하다. 이런 마당에 표를 얻겠다며 청년의 생존경쟁을 젠더 갈등으로 치환하는 ‘혐오정치’는 다른 이름의 ‘청년 착취’다.

‘2022 대선청년네트워크’는 4당 대통령 후보자를 초청한 토론회를 기획하고 있다. “청년과 함께하겠다”고 선언한 윤 후보 쪽의 답변만 아직 없다고 한다. 내일을 꿈꿀 수 없는 청년의 불안에 대해 정치가 답할 시간이다.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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