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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고립된 이들의 시간과 정치

등록 2022-02-28 04:59수정 2022-03-30 11:28

[세상읽기] 김만권 l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제2의 스티븐 호킹’이라 불리는 이탈리아의 이론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떤 곳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어떤 곳에서는 빨리 흐른다.” 시간은 산에서 더 빨리, 평지에서는 더 늦게 흐른다. 로벨리는 멈춰 선 사람과 움직이는 사람 사이에 시간이 어떻게 달리 움직이는지도 설명한다. 로벨리에 따르면, “움직이는 친구는 멈춰 선 친구에 비해 덜 늙고, 생각할 시간도 적고, 그가 보는 시계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움직이는 물체가 정지해 있는 물체보다 더 많은 시간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으로 보자면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삶의 시간을 경험한다는 뜻이다.

뜬금없이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이동권을 두고 지난 3일부터 벌인 21일간의 지하철 시위 때문이다. 전장연은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 100% 설치 등을 위한 장애인 이동권 예산 확보를 외치며 서울 지하철 4호선과 5호선에서 출근길 시위를 벌였다. 움직이는 사람들이 더 많은 삶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다면, 이동할 수 있는 권리는 당연히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할 가장 기초적인 권리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 이동권은 오랫동안 무관심의 대상이었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이동권 운동은 2001년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노부부가 수직형 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해 사망한 사건이 있고서야 시작되었다.

인간에게 이동권은 단순히 더 많은 삶의 시간을 경험한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동권은 삶의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드는 기초다. 주위를 보면 팬데믹 확산을 막기 위해 이동할 때 마스크를 쓰라는 단순한 이동의 제한에도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 많은 사람이 마스크만 벗고 지내도 살 것 같다는 말을 한다. 알고 보면 이 사소한 것이 자유로운 이동권의 일부인 것이다.

이런 이동권의 실현이 더 절박한 이유는 그렇지 못한 자의 삶이 대개 고립의 시공간에 갇힌다는 데 있다. 이동의 제한이 만드는 고립을 장애인만 겪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이다. 코로나 시대 이동의 제한이 만들어내는 부수적 피해의 대상이 된 수많은 자영업자들 역시 이런 고립의 시공간에서 비롯된 절망을 매일매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이분들에게 유의미한 삶의 시간은 2년 전에 멈추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방역에 치열하게 나서는 이유는 생명권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이 유의미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자유로운 이동권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장애인들이 절실하게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이유다.

문제는 장애인 이동권에 관해 우리나라가 별로 내세울 게 없다는 데 있다. 한 예로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저상버스 보급률은 28%에 불과하다. 버스 정류장에서 10대 중 최소 7대를 그냥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최근에 장애인들이 더 격렬히 시위에 나선 데는 이유가 있다. 기획재정부가 이동권 관련 예산 편성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 출근길 버스를 가로막아도, 기재부 장관 집 앞을 찾아가 시위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지난해 12월에만 다섯차례 시위를 벌였지만 <한겨레>와 <한국일보>(각 5회) 정도를 제외하곤 이를 보도한 언론조차 제대로 없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시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지만, 그런 시위를 아무리 해봐도 전혀 먹혀들지 않은 것이다.

놀랍게도 이 21일간의 시위를 멈추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건 정치인이 배려한 ‘1분’이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21일 티브이(TV) 토론에서 마지막 1분을 장애인들의 이동권 시위를 언급하며 그 책임이 정치권에 있다는 발언에 썼다. 이틀 뒤 심 후보가 시위 현장을 방문하고, 그 1분을 믿은 장애인들은 시위를 멈췄다. 한 참가자는 “모든 국민이 보는 앞에서 장애인 이동권이 언급되고, 우리의 절절하고 기나긴 외침이 토론회장에 올라왔다는 것 자체가 너무 힘이 된다”고 말했다. 장애인들이 멈춰 선, 의미 있는 삶의 시간이 그 1분으로 인해 다시 흐를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 것이다.

이것이 정치의 힘이다. 정치는 누군가가 멈춰 선 ‘인간다운’ 삶의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할 수 있다. 비록 늦었지만, 이제 ‘책임지는’ 정치가 그 1분이 만든 ‘이동권’의 희망에 온전히 응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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