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피란길에 나선 키이우(키예프) 시민들이 키예프 중앙역에서 지난 1일(현지시간)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기억과 미래] 정병호 |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21세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러시아군의 공습 때문에 지하철로 피신한 우크라이나 여성이 탄식했다. 아기 분유와 기저귀도 제대로 못 챙긴 채 나와서 당장 마실 물과 식량, 화장실까지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다. 과거와 달리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계는 그들이 겪는 고통과 두려움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연대하고 있다.
푸틴과 같은 권력집단이 착각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달라진 현실이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옛날 러시아제국의 신민이나, 소련의 인민이 아니다. 온 세상과 교류하며 살고 있는 세계시민이다. 냉전시대 소련처럼 철의 장막을 치고 위성국가처럼 그들을 지배할 수 있는 시대는 갔다.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면서 서방국가의 경제제재는 계산했겠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글로벌 시민사회의 도덕적 분노는 얼마나 고려했을까? 푸틴은 전쟁을 일으킨 지 일주일 만에 세계시민을 반러시아로 만들었다. 유럽 각국은 러시아와 교류를 끊고,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랍 세계 시민들까지 우크라이나 깃발을 들고 푸틴의 침략행위를 규탄하는 반전구호를 외치고 있다.
푸틴이 지배하는 러시아조차도 과거처럼 폐쇄된 사회가 아니다. 이미 경제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 글로벌 사회에 깊이 연계되어 있다. 러시아의 엠제트(MZ)세대는 제국주의 야망으로 국민의 안위와 자신들의 미래를 망가뜨리는 지도자를 비판하기 시작했고, 여러 도시에서는 전쟁을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미 수천명의 시위대를 잡아 가두었지만, 지금도 모스크바의 우크라이나대사관 앞에 수많은 러시아 시민들이 찾아와 위로와 사과의 뜻으로 꽃을 놓고 있다.
시대착오적인 국가주의 권력 엘리트들은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 정보, 사람들로 뒤엉킨 초국가적 현실에 대한 인식이 희박하다. 실제로 푸틴의 전쟁은 양쪽 나라에 뒤섞여 살고 있는 수많은 우크라이나 사람과 러시아 사람 모두를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 크렘린궁 앞에서 “이 전쟁은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의 전쟁이 아니다. 시대착오적인 독재자의 전쟁”이라고 선언한 러시아 반정부 인사의 말은 이런 초국가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전쟁 발발 닷새 만에 50만명이 넘는 평범한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이웃 나라 국경을 넘어 난민이 되었고, 구호단체들은 500만명 규모의 국제난민 발생을 경고하고 있다. 톨스토이와 차이콥스키의 러시아는 이제 ‘푸틴의 러시아’, ‘침략국 러시아’가 되어, 국제사회의 경계와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구실로 이라크를 침략한 미국의 부시 정권 때문에 이라크 시민 400만명은 국제적 난민이 되었고, 미국 시민들도 보복테러에 희생되었던 강대국 전쟁범죄의 악순환이 이렇게 되풀이되고 있다.
강대국 권력자들만 시대를 착각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주의 이념을 절대시하는 여러 나라의 권력 엘리트들도 전쟁게임 논리로 국민을 선동하며 국가 간 갈등과 파국을 조장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지정학적으로 세계 4대 강국의 정치군사력이 교차하는 분단국가, 한국도 성공과 자멸의 갈림길로 자주 내몰리고 있다. 글로벌 사회의 경제문화 현실과 국가주의 권력정치 간의 괴리가 큰 이런 전환시대를 살아내려면 국가 차원의 지혜로운 선택과 유연한 외교가 필요하다.
문화인류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강대국 옆 작은 나라는 특히 ‘예방외교’를 해야 한다고 권한다. 위험을 키우지 말고, 미리 감지해서 그 위험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되는 조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가급적이면 눈에 띄지 않게 하는 것이 현명하다.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입장을 바꿀 수 없는 작은 나라는 외교정책에 감정을 섞을 여유가 전혀 없다. 고통스럽고 답답해도 엄연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소련의 침략을 처절한 저항으로 물리친 핀란드는 그러한 재앙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전체주의 소련과도 화해하고 중립국으로서 신뢰를 구축하며 냉전시대를 극복했고, 풍요로운 인권 선진국이 되었다.
“평화가 밥이고, 평화가 경제다.” 화염병과 소총으로 미사일과 탱크에 맞서는 영웅들이 필요한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현명한 지도자다. 스스로도 영웅이 되려 하지 않고, 전쟁 자체가 일어나지 않도록 평화를 관리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듣기에 통쾌한 공격적 언사로 무책임하게 국민을 선동하는 정치가는 위험하다. 인류사회가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기후, 생태, 생명 위기 앞에서 낡은 국가주의 패권경쟁과 퇴행적 땅따먹기 전쟁게임을 벌이고 있는 시대착오적 권력집단들을 축출하는 일이 ‘인류안보’의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