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사단법인 조각보가 서울 중구 남산의 서울유스호스텔에서 진행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사할린, 중국 길림, 남북한 출신 여성들의 공감대화 프로그램 ‘다시 만난 코리안 여성들의 삶 이야기' 모습. ㈔조각보 제공
[기억과 미래] 정병호 |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공감은 인류 생존의 열쇠다. 인간이란 동물이 지구상에서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집단을 만들고 협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으로서 인간은 약해도 집단은 강하다. 집단을 만들고 협력하려면 공감과 소통이 필요하다. 사피엔스란 종은 특히 공감능력이 뛰어나서 전 지구적으로 교류하고 협력하는 체제를 구축하고 그것에 의존해서 살고 있다. 마치 거미가 자기가 짠 거미줄에 매달려 사는 것과 비슷하다.
공감은 동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생존 기술인 ‘친절함’의 바탕이 된다. 인간의 친절한 마음은 무력한 아기를 살아남도록 하고, 자기와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친족을 돕고, 다른 이들과 협동해서 집단을 번성하게 한다. 공감과 협력은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생물의 경쟁적 속성에만 주목해서 ‘약육강식’이라는 왜곡된 해석을 자연법칙처럼 배웠다. “생물학자들의 죄가 크다.”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교수의 말이다.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오로지 주변을 제압하고 이기는 것이라고 믿도록 했기 때문이다. 사실 진화의 역사에서 가장 다정하고 협력적인 종은 바로 인간이다. 서로의 마음을 알아서 함께 손잡을 수 있는 친절한 동물이기에 살아남았다.
‘적자생존’ 원리를 권력과 경쟁의 논리로 왜곡한 것은 생물학만이 아니라 모든 근대 학문이 함께 저지른 잘못이었다. 그렇게 제국주의 침략을 합리화하고, 자본주의 승자 독식 원리를 뒷받침했다. ‘동물의 왕국’은 약한 동물을 잡아먹는 포식자를 ‘왕’이라 했고,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며 극단적인 경쟁으로 사람들을 내몰았다. 모든 것을 점수화해서 경쟁시키는 교육, 성과를 입증해야 살아남는 직장, 사회적 약자를 무참하게 짓밟는 차별사회에서 남을 이기기 위해 발버둥 치며 살도록 했다.
교류와 이주로 새롭게 마주치게 된 ‘다른 집단’에 대한 경계심은 에스엔에스(SNS)와 가짜뉴스를 통해 폭넓게 확산돼 혐오의 감정을 퍼트리고 있다. 디지털 소통 방식은 폐쇄적 집단편향도 아울러 심화시켰다. 고도 산업사회일수록 공감능력이 쇠퇴하고 있고, 아예 마비된 사람들마저 늘어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필수적인 글로벌 협동 역량을 약화한다. 사회적 공감위기는 자연 생태위기와 함께 인류를 파멸로 이끄는 요인이기도 하다.
최근 인류학, 심리학, 생물학, 교육학 분야에서는 공감에 대한 연구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심리학자인 자밀 자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공감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지 알고(인지적 공감), 그의 감정을 함께 느끼면서(정서적 공감), 그를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공감적 배려) 통합된 과정으로, 사람 간의 거리를 뛰어넘게 하는 일종의 정신적 초능력”이라고 했다.
공감은 능력이다. 자연스럽게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인 동정이나 연민과는 차이가 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경험을 이해하는 능력인 공감은 기질보다는 기술에 더 가깝다. 따라서 배우고 연습하면 상당히 효과적으로 키울 수 있다. 전 지구적 위기에 대처하려면 시간적·공간적으로 확대된 공감능력을 키워야 한다. 미래세대와 공감하며 생태 환경을 지키고, 이질적 집단과도 공감하며 조화롭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대가족과 공동체 구성원들의 활발한 상호작용을 통해 자연스럽게 익혔던 공감능력을 핵가족으로 분화된 사회에서 키우려면 문화적으로 기획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세계 여러 곳에서 평화 교육, 문화 이해 교육 프로그램으로 공감대화가 활용되고 있다. 공감대화는 평등한 조건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질문하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자신의 인식과 느낌을 성찰적으로 바꿔나가는 과정이다. 상대를 설득하려는 토론이나 논쟁이 아니다. 대화 목적도 동의가 아니라 이해다. 참가자들은 자기 이야기를 경청해주는 것만으로도 존중받고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공감적 이해는 편견을 해소하고 공동체적 연대의식이 싹트는 계기가 된다.
한국 사회의 공감위기는 심각하다. 분단과 전쟁 트라우마로 심화된 남북 대립은 상대방을 쳐부수어야 할 적으로 삼게 했다. 이를 복제한 남남갈등은 다시 지역, 이념, 세대, 성별, 계급, 장애 등 모든 사회적 경계를 당파싸움의 도구로 삼아 충돌을 부추겼다. 일상적 갈등에 질린 사람들은 사회관계를 닫고, 언론은 세상의 나쁜 면을 주로 보도하며 부정편향을 강화하고 있다. 이제 사회적 공감능력을 키우고 되살리는 것은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 어린이집과 학교, 이웃과 직장까지 공감대화 프로그램으로 서로에게 친절한 살 만한 세상을 만들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