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우크라이나와 한반도

등록 2022-04-27 17:59수정 2022-04-28 02:39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24일(현지시각) 수도 키이우를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오른쪽),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과 회담하기에 앞서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키이우/로이터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24일(현지시각) 수도 키이우를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오른쪽),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과 회담하기에 앞서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키이우/로이터 연합뉴스

[정병호의 기억과 미래] 정병호 |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우크라이나 평화협상 중에 ‘코리아 모델’이 해결 방안의 하나로 제시되었다. 분단이 해결이라니! 한반도 분단의 배경이 된 강대국의 국제정치 논리가 그대로 드러났다. 침략전쟁이 완강한 저항에 부딪혔을 때 일부 지역을 점령한 상태에서 장기적으로 분쟁을 지속하도록 하는 것이다. 강대국에 의존하는 세력을 양성해서 서로 대립하도록 하면 직접 싸울 필요가 없어진다. 국토 분할과 국민 대립은 국력 소모의 지름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반도의 과거, 현재, 미래를 돌아보게 한다. 우선 현재 한반도가 불안정한 휴전 상태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남과 북의 경계는 주변 초강대국들이 만든 것이라 그들에 의해 바뀔 수 있다. 미국과 유럽 세력이 러시아 세력과 경합하고 있던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벌어진 상황에서, 유라시아의 동쪽에서도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태평양 세력과 중국과 러시아가 중심이 된 대륙 세력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이 거론되고, 한반도가 세력 충돌의 최전선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분단은 초강대국들의 패권경쟁 도구로 이용될 수 있는 치명적 약점이다.

이 땅이 다시 전쟁터가 되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 가공할 파괴력을 가진 현대전쟁에 휘말리면 남과 북은 공멸한다는 위기감을 바탕으로 한반도라는 같은 배에 탄 사람들로서 공동운명체라는 자각이 필요하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남과 북이 대화하고 협력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민족 간 대화는 최우선 과제다.

초강대국들 사이에 낀 국가는 생존을 위한 ‘예방외교’를 해야 한다. 어느 한쪽 편에 서서 갈등을 고조시키는 어리석은 일은 삼가고, 국가 간 권력관계와 국익에 대한 자각을 토대로 판단해야 한다. 정직한 자기평가와 조심스러운 대응이 격동기를 극복하기 위한 기본자세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에게 “한국과 중국은 이사할 수 없는 이웃 관계”라고 말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라는 의미심장한 경고다.

최고의 외교는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다. 내부 분열은 외세가 오판하고 개입할 수 있는 빌미를 준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여론 분열은 최악이다. 불평등한 현실에 좌절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은 사람들은 일상에 압도되어 역사를 돌아볼 겨를이 없다. 실질적인 삶의 조건을 개혁하지 못하는 권력은 무능력과 무책임을 감추기 위해 외부에 적을 만들어 국민을 분노하게 한다. 증오의 정치는 위기를 증폭시킨다. 화합의 정치가 안보의 기본이다.

가짜뉴스는 위기를 꾸며내고 정치적 허구를 국내외로 전파하면서 진실을 부정한다. 편향적 주류 언론도 문제지만 에스엔에스(SNS)를 통한 가짜뉴스가 심각하게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예일대학의 티머시 스나이더 교수는 러시아가 사이버 공작을 통해 퍼트린 가짜뉴스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유럽연합을 해체하고 미국 사회를 분열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주변국과 외국인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있다. 한반도의 안보위기는 사이버 공간에서 먼저 심화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일곱번째로 ‘30-50클럽’(소득 3만달러, 인구 5천만 이상인 국가)에 들어간 부강한 나라다. 지정학적으로 초강대국인 중국, 러시아, 일본과 접하고, 미국과 연결되어 있어서 상대적으로 작고 약하게 보일 뿐이다. 미리 열패감에 젖어들거나 섣불리 자만하지 말고, 실재하는 힘의 가능성과 한계를 냉철하게 인식하고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역설적으로 평화의 도구로서 디지털 소통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 침략에 맞서 우크라이나는 대통령부터 피난민들까지 필사적으로 미디어와 에스엔에스를 통해 메시지를 발송하며 저항하고 있다. 세계 여론은 뜨겁게 반응했다. 초강대국의 침략과 만행을 실시간으로 보고, 함께 규탄하고, 국제제재를 강화했다. 푸틴의 러시아는 사이버 전쟁에서 이미 패배했다. 침략국 러시아의 국가 위상은 땅에 떨어졌고, 경제는 파산위기를 맞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가 간 전쟁을 넘어서 새로운 국제질서의 향방을 가르는 중요한 싸움이 되었다. 강대국 패권과 불평등을 전제로 한 ‘제국의 원리’와 평등한 국가관계를 모색하는 ‘통합의 원리’가 충돌하고 있다.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려는 세력과 미래를 꿈꾸는 세력의 대립이 되었다. 전쟁터가 된 우크라이나에서는 지금도 사람들이 죽고 국토가 파괴되고 있다. 한시바삐 전쟁을 멈추도록 해야 한다. 국제법과 국제기구는 여전히 무력하지만, 국제 여론은 새로운 힘을 발휘하고 있다. 전쟁 비극의 틈새에서 자라난 글로벌 평화연대의 힘이 희망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보수의 헌재 흔들기는 ‘반국가 행위’ 아닌가 1.

보수의 헌재 흔들기는 ‘반국가 행위’ 아닌가

[사설] 속속 드러난 ‘윤석열 거짓말’, 언제까지 계속할 건가 2.

[사설] 속속 드러난 ‘윤석열 거짓말’, 언제까지 계속할 건가

[사설] ‘모든 책임 지겠다’는 사령관, 내 책임 아니라는 대통령 3.

[사설] ‘모든 책임 지겠다’는 사령관, 내 책임 아니라는 대통령

[사설]“탄핵되면 헌재 부수라”는 인권위원, 그냥 둬야 하나 4.

[사설]“탄핵되면 헌재 부수라”는 인권위원, 그냥 둬야 하나

트럼프 ‘가자 리조트’ 구상, 다른 목적은 무얼까 [2월6일 뉴스뷰리핑] 5.

트럼프 ‘가자 리조트’ 구상, 다른 목적은 무얼까 [2월6일 뉴스뷰리핑]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