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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또다시 ‘가만히 있으라’는 건가

등록 2022-04-04 16:05수정 2022-04-05 02:39

2014년 4월16일 오후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부근에서 해경과 해군, 민간 선박 등이 실종자 구조 및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진도/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014년 4월16일 오후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부근에서 해경과 해군, 민간 선박 등이 실종자 구조 및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진도/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편집국에서] 전정윤 | 사회정책부장

‘재난을 통해 사람들은 그동안 중요하게 여겼던 모든 가치에 의문을 갖고 더 본질적인 무언가를 응시하게 되며, 새로운 사회변화를 일구는 추동력이 될 수 있다.’

다시 4월, 리베카 솔닛이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역설했던 이 절망 속 희망이 적어도 한국에서는 폐기됐음을 이번엔 정말 확인하게 될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온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어느덧 8번째… 매년 ‘그날’이 되면 아직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음을 확인하곤 했지만, 이번 대선을 거치며 세월호 참사로 참혹하게 얻은 그 ‘추동력’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슬픈 예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이 대선 후보들에게 질의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6대 과제’에 유일하게 응답을 거부한 후보였다. 그가 세월호 유가족을 무시하고도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이번 대선에서, 단원고 학생 250명을 포함한 304명의 죽음이 던져준 ‘세월호의 교훈’이 잊혔기 때문이다.

온 국민이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세월호가 침몰한 뒤, 우리는 한국 사회가 거대한 세월호였고, 지금 이곳이 맹골수도라는 걸 최대치의 비극으로 확인했다. 맹목적인 기업 이윤 극대화, 청해진해운 경영진·승무원과 공무원들의 도덕적 해이, 침몰 신고부터 침몰까지 2시간여 동안 단 한명도 못 구한 정부 재난관리체계의 극단적 무능과 책임 회피… 참사를 통해 한국 사회의 ‘총체적 구멍’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이것이 국가냐’는 근본적인 질문이 터져 나왔다. 또 하나, 당시 공개된 영상 속에서 아이들은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말고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을 듣고는 “예” 하고 대답했다. 경제 논리에 매몰돼 생명과 안전, 건강과 행복을 돌보는 교육을 등한시하고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가르쳐왔다는 성찰, 교육 패러다임을 바꿀 때가 됐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믿기 힘든 결과지만, 세월호 참사 한달 반 뒤 치러진 6·4 지방선거에서 가공할 무능이 이미 확인된 집권 여당 새누리당이 예상 밖 선전을 하며 ‘보수 우위’ 구도를 확인시켰다. 그러나 시·도교육감 선거에서는 진보 교육감 13명이 당선되며 ‘교육 혁명’에 준하는 격변이 일어났다. ‘앵그리맘’들이 기성 교육 체제를 반성하고, 아이들의 ‘인간적인 성장’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분석이 잇따랐다. ‘특권 학교’를 확대한 이명박 정부, 이를 방치한 박근혜 정부, 보수 정부와 짝패였던 보수 교육감들이 심판대에 올랐다.

이번 대선에서 노동과 복지 등 사회 의제들이 주목받지 못한 가운데, 특히 교육 의제는 다섯차례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교육의 교 자도 안 나왔다’는 탄식이 나올 만큼 자취를 감췄다. 지난해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이 2007년 조사 시작 이래 ‘역대 최대’를 기록할 정도로 과도한 입시 경쟁과 교육 불평등이 오히려 악화됐지만, 대선 후보들은 현실을 외면했다. 선거운동 기간 “코딩에 ‘국영수’ 이상의 배점을 둬야 하지 않겠냐”던 윤석열 당선자는 ‘100만 디지털 인재 양성’을 공약했다. 당선 뒤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과학기술교육분과에 교육 전문가를 한명도 넣지 않았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코딩 기계’를 갖다 바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도 되는 듯 줄곧 과학기술, 산학협력만 강조했다. 교육계에서는 윤 당선자가 “아이들을 인간이 아닌 도구”로 보고, “학교를 이윤 추구가 유일한 목적인 기업과 동일시한다”고 비판한다. 세월호 참사 전보다 더 노골적으로 경제논리에 종속된 교육 시스템으로 돌아가겠다는 선언이지만 이제 논란조차 되지 않는다.

박민규 작가는 <눈먼 자들의 국가>에서 “기울어가는 그 배에서 심지어 아이들은 이런 말을 했다. 내 구명조끼 입어… 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는 기울어진 배에서… 그랬다. 나는 그 말이 숨져간 아이들이 우리에게 건네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탄 배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세월호라는 배를 망각의 고철덩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썼다. 참사 이후 우리의 회한과 지향을 담아낸 탁월한 언어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그 마지막 기회마저 놓쳐버린 채, 몸에 밴 과거의 체질로 완전히 돌아와 있다. 대통령 당선자의 빈곤한 교육철학은 그것을 증명한다.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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