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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하종강 칼럼] 장애인 이동권 시위와 노동3권

등록 2022-04-05 12:24수정 2022-04-06 02:37

단체행동권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파업을 함으로써 기업과 사회에 경제적 손실을 발생시키고 시민들에게는 불편을 끼칠 수 있는 권리이다. 노동자들의 ‘파업’이야말로 본래 사람들에게 불편과 손해를 끼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이 헌법으로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2016년 3월 프랑스 노동자와 학생 단체가 정부의 노동법 개악에 반대하며 벌인 대규모 총파업 관련 집회. 당시 총파업으로 프랑스를 오가는 항공·철도 운행에 차질이 빚어졌고, 관광 명소인 파리 에펠탑이 문을 닫기도 했다. 마르세유/AP 연합뉴스
2016년 3월 프랑스 노동자와 학생 단체가 정부의 노동법 개악에 반대하며 벌인 대규모 총파업 관련 집회. 당시 총파업으로 프랑스를 오가는 항공·철도 운행에 차질이 빚어졌고, 관광 명소인 파리 에펠탑이 문을 닫기도 했다. 마르세유/AP 연합뉴스

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수도권 지하철에서 출근 시간에 벌인 시위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비난 발언을 장애인 혐오라고 규탄하는 시선이 있는가 하면 그것이 어째서 혐오 발언이냐고 옹호하는 주장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그 몇차례의 시위가 있기 전까지 장애인들의 이동권 문제가 그렇게 심각한 상황인지 몰랐던 사람들이 많았고 정치인들이 시급하게 해결하려고 나서는 중요한 사회 의제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위의 목적은 본래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장애인 차별이 철폐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선을 넘은 주장에까지 동의하기는 어렵다”는 충고가 이어지기도 한다.

프랑스 공영 교육방송의 청소년용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한 대목이 생각난다. “시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음을 의미해요. 불행하게도 권위적인 지도자가 정권을 잡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없어요.”

흔히 말하는 것처럼 프랑스는 ‘톨레랑스’의 나라이다.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대중교통이 멈춰도 지하철이나 버스에 숨 막힐 듯 갇혀 있는 시민들이 별로 불평하지 않더라, 간혹 불평을 늘어놓는 시민이 있으면 더 많은 시민들이 그 사람을 나무라더라, “우리가 불편하다고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비난하면 지금 노동자들의 권리를 빼앗는 사람들이 언젠가 우리의 권리를 빼앗게 된다는 것을 왜 모르느냐”고 충고하더라는 얘기들이 ‘톨레랑스’라는 단어를 뜻하는 일화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신자유주의’ 광풍이 프랑스라고 비켜갈 리 없어서 노동자 파업을 바라보는 프랑스 시민의 시선도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듣기도 했으나 ‘톨레랑스’가 대중적 정서로 자리 잡는 과정을 역사 속에서 한번이라도 겪어본 사회와 그러한 경험이 한번도 없었던 사회는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유럽에서 대중교통 파업으로 시민들이 겪는 불편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택시가 파업했는데 해결되지 않으면 버스가 파업하고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철도가 파업하고 며칠 뒤에는 항공이 파업하는 방식으로 전개돼 파업 참가 노동자 수가 쉽게 100만명을 넘기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한마디로 모든 대중교통이 동시에 멈추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도 대부분의 시민들이 불평하지 않는다?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리스에서 200만명의 노동자가 파업에 참가해 행정과 교통이 거의 마비된 적이 있었다. 공무원·경찰·해양경비대원까지 파업에 가세해 도시 기능이 완전히 멈췄을 때, 마침 가수 하림씨가 그리스 여행을 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 같이 출연했던 방송에서 경험담을 직접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기억나는 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유럽은 파업을 하면 아주 심하게 하더라고요. 길에 쓰레기가 쌓여서 난리가 나고 심지어 전기까지 나갔어요. 그런데 제가 묵었던 홈스테이 식구들은 전기가 나가면 촛불 켜고 음악 하며 놀고, 쓰레기가 쌓이면 나중에 버리면 된다고 별로 불편으로 여기지 않더라고요. 세상이 멈췄는데 가족들이 모두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더라고요.”

하림씨는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 했다. 그런데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면 우리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많은 나라에서는 대부분 이해하고 있는데 줄잡아 식민지 40년 뒤에 분단이 70년이나 이어지고 그 와중에 군사정부가 30년 가까이 집권했던 매우 특별한 근현대사를 거친 우리 사회에서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3권’ 중 단체행동권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파업을 함으로써 기업과 사회에 경제적 손실을 발생시키고 시민들에게는 불편을 끼칠 수 있는 권리이다. 노동자들의 ‘파업’이야말로 본래 사람들에게 불편과 손해를 끼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이 헌법으로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 사회가 그러한 불편을 감수해야만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산업혁명 이후 200여년의 자본주의 이행 과정에서 검증됐기 때문이다.

간혹 헌법에 노동3권이 명시되지 않은 선진국이 극히 드물게 있다는 이유로 “노동3권을 헌법에서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볼 수 있는데, 어려운 성문헌법 이론을 제시할 것도 없이 노동3권을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선진국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만으로도 더 이상 논란거리가 되기는 어렵다. 노동자의 파업권과 장애인 이동권을 같은 차원에서 볼 수 없다는 이견에 대해서는 할 말이 또 태산이지만 다음 기회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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