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대통령 당선자의 ‘기저효과’

등록 2022-04-07 04:59수정 2022-04-07 18:30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생산성본부 건물에 마련된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에 출근하며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생산성본부 건물에 마련된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에 출근하며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편집국에서] 최혜정 | 정치부장

구수한 윤석열, 윤석열의 진심, 윤석열의 운명, 그래도 윤석열, 윤석열 엑스(X)파일….

인터넷 서점에서 ‘윤석열’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도서들이다. 윤석열 20대 대통령 당선자의 인간적인 면모와 결기를 칭송하거나, 혹은 정반대의 주장을 담고 있다. 공통점은 있다. 모두 ‘남이 쓴 책’이다.

지난 대선 기간 당혹스러웠던 점 중 하나는 ‘대통령 후보 윤석열’이 직접 그린 대한민국이 어떤 모습인지 가늠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정치인들은 정치 입문 또는 주요 선거를 앞두고 통상 자신의 구상을 담은 책 한권 정도는 내놓는다. 이를 통해 왜 정치를 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우선순위는 무엇인지를 국민들에게 알린다. 윤 당선자는 이 과정을 생략한, 민주화 이후 첫번째 대통령이 될 것 같다. 당선자의 지난 한달이 대선 때와는 또 다른 차원의 당혹스러움으로 채워진 데는, ‘정권교체’ 외에 그의 국정철학을 엿볼 수 있는 참고자료가 없던 탓도 크다.

그는 처음 정치에 참여할 때부터 공정과 상식을 주요 가치로 내걸고 있으나, 정답이 없는 ‘공정’과 ‘상식’의 잣대는 사안마다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당장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고위공직 경력을 이용해 김앤장법률사무소에서 4년4개월간 18억여원의 고문료를 받은 사실은 공정한가. 이를 알면서도 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것은 상식적인가. 매달 3500만원에 차량과 사무실까지 지원받았다는 한 후보자가 최저임금(시간당 9160원) 인상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즉자적인 반감부터 일으킨다.

윤 당선자가 가장 빛났어야 할 지난 한달은 난데없는 집무실 용산 이전 논란,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인사권 갈등으로 퇴색됐다. 스스로 말을 뒤집기도 한다. 자신이 대선 때 약속했던 ‘광화문 집무실’은 갑자기 “시민의 재앙”이라고 폄하하더니, 며칠 만에 ‘용산행’을 밀어붙였다. ‘부정적 여론’에 대해선 “여론조사를 해서 몇 대 몇이라는 것은 별 이유가 없고, 국민들께서 이미 정치적·역사적으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고 단언했다. 여론조사의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윤 당선자가 이제 와서 ‘여론조사 무용론’을 펴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협치와 통합을 강조하면서도 ‘예비 야당’과의 공개적 소통은 없었다. 자신의 색깔이 분명치 않고 정치적 기반이 취약하다 보니 ‘윤핵관’이 득세하고, 당선자 주변은 이명박 정부 인사들로 채워진다는 우려가 당내에서도 나온다. 여성과 소수자의 목소리를 반영해온 창구는 공식적으로 지워지고 있다.

이는 역대 최저의 당선자 지지율로 나타난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1~2일 조사한 내용을 보면, 윤 당선자가 ‘잘할 것’이라는 전망은 49.6%, ‘잘 못할 것’이라는 답은 46.6%였다. 한국갤럽의 지난달 29일부터 31일까지의 조사에선 긍정 전망 55%, 부정 전망 41%였다. 전임 대통령들의 당선 2주 내 지지율은 80% 안팎에 이른다. 새 정부에 대한 기대는 집권 초반 국정운영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172석 ‘거대 야당’을 상대해야 할 윤 당선자에겐 더 절실한 조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선자 쪽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쪽은 평온하다. 당선자 대변인이 지방선거에 출마하겠다며 중간에 떠나는 모습은 기이하기까지 하다. 인수위 내부에선 5월10일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하면, 그때부턴 오롯이 ‘윤석열의 시간’이라는 자신감이 있다고 한다. 당선자 쪽의 한 인사는 “기대치가 낮으니 조금만 성과를 내도 분위기가 급반전할 것”이라고 했다. 대선 토론회 준비 때도 비슷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오답노트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자중지란에 빠진 더불어민주당을 보면, 문 대통령이 누린 ‘야당 복’을 윤 당선자도 누릴 것 같기도 하다. 정치적 내전 상태는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윤 당선자는 탄탄한 당내 기반도, 고정적 지지층도 없다. 이는 약점처럼 보이지만, 반대로 유연함을 발휘할 수 있는 강점이 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잘된 정책은 계승하겠다”는 약속이 빈말이 아니었으면 한다. 함께 밥 먹는 대상을 당 밖으로 넓히고, 독선을 결단으로 착각하지 않으며, 민심을 두려워했으면 한다. ‘낮은 기대치’에 따른 기저효과를 동력으로 삼기엔 5년이 너무 길다.

idu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우리 엄마가 ‘백종원’으로 변했어요~ 1.

우리 엄마가 ‘백종원’으로 변했어요~

뻔뻔하다 [말글살이] 2.

뻔뻔하다 [말글살이]

역지사지 실험, ‘김건희’ 대신 ‘김정숙’ 넣기 [아침햇발] 3.

역지사지 실험, ‘김건희’ 대신 ‘김정숙’ 넣기 [아침햇발]

서서히 옛말이 되어갈 명절 증후군 [유레카] 4.

서서히 옛말이 되어갈 명절 증후군 [유레카]

“추석 응급의료 큰 불상사 없었다”며 자화자찬할 때인가? [9월19일 뉴스뷰리핑] 5.

“추석 응급의료 큰 불상사 없었다”며 자화자찬할 때인가? [9월19일 뉴스뷰리핑]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