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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호의 저널리즘책무실] <한겨레>는 왜 ‘당선자’라고 쓰나?

등록 2022-04-20 19:55수정 2022-04-21 02:36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공동취재사진

<한겨레>는 ‘당선자’와 ‘당선인’ 중 무엇을 쓸 것인지 논의했습니다. 양쪽 의견이 모두 있었습니다. 최종적으로 ’당선자’로 결정했습니다. 이 결정은 선거 이전에 논의됐으며, 정치적 고려는 없었음을 말씀드립니다.

‘당선자’ 표기 관련 내부 논의 및 결정 과정을 뒤늦게 전해 죄송합니다.

권태호 | 저널리즘책무실장·논설위원

<한겨레>에는 언론학 분야 전문가인 세분의 저널리즘책무위원이 있습니다. 한겨레 콘텐츠에 대한 비평을 격주마다 보내옵니다. 2주 전 책무위원 중 한분이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까지 ‘당선인’이라는 용어가 쓰였는데, 윤석열 당선 때부터 바꾼 이유가 무엇이냐”는 의문을 이 비평을 통해 제기했습니다.

독자들께 그 답변을 설명드립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때까지 모든 언론은 ‘당선자’라고 썼습니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당선자였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주호영 대통령 당선자 대변인이 “당선인으로 써달라”고 언론에 요청했고, 이후 ‘당선인’으로 바뀌었습니다. 2007년, 2012년 대선 때 정치부에 있었던 저는 ‘한겨레는 당선자로 써왔다’고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옛 신문을 들춰 보니 <한겨레>는 2007년 12월 대선 이후 10여일 동안 ‘당선자’로 쓰다가, 1월1일부터 ‘당선인’으로 표기를 바꾼 것으로 나타납니다. 2012년 박근혜 당선, 2017년 문재인 당선 당일 신문에는 ‘당선인’으로 표기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기사 및 일부 지면 기사 등에선 ‘당선자’가 혼용됐습니다. ‘당선자’, ‘당선인’ 표기에 대한 민감성이 높지 않았고, 깊은 논의가 없었던 탓입니다.

대선 다음날인 2002년 12월20일 &lt;한겨레&gt; 2면 기사. 노무현 당선자로 표기돼 있다.
대선 다음날인 2002년 12월20일 <한겨레> 2면 기사. 노무현 당선자로 표기돼 있다.

대선 직후인 2007년 12월21일 &lt;한겨레&gt; 1면. 이명박 당선자로 표기돼 있다.
대선 직후인 2007년 12월21일 <한겨레> 1면. 이명박 당선자로 표기돼 있다.

대선 다음날인 2012년 12월20일 &lt;한겨레&gt; 8면. 박근혜 당선인으로 표기돼 있다.
대선 다음날인 2012년 12월20일 <한겨레> 8면. 박근혜 당선인으로 표기돼 있다.

대선 다음날인 2017년 5월10일 &lt;한겨레&gt; 8면. 문재인 당선인으로 표기돼 있다.
대선 다음날인 2017년 5월10일 <한겨레> 8면. 문재인 당선인으로 표기돼 있다.

‘대통령 당선인’ 호칭이 처음 쓰이기 시작한 이명박 인수위원회 시절인 2008년 1월10일 헌법재판소는 공보관을 통해 비비케이(BBK) 특검법에 대한 헌재 결정 결과를 설명하면서 “헌법을 기준으로 하면 ‘당선자’가 옳다. 특히 헌재 결정과 관련해선 ‘대통령 당선인’보다는 헌법이 규정한 표현을 써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다음날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이 “인수위 간사단 회의에서 호칭 관련 논의를 벌여 현재대로 ‘당선인’을 당분간 쓰기로 했다. 헌법에 규정된 ‘당선자’ 개념은 대선에서 다수 득표를 한 사람을 말하는 것일 뿐, 대통령직을 인수하기 위해 활동하는 인격체를 말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 인수위 안팎 법학 전공자들의 의견”이라며, 헌재 의견을 반박합니다. 선관위가 교부하는 당선증에도 ‘당선인’으로 표기돼 있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당시 인수위가 ‘당선인’을 선호한 것은 ‘놈 자’(者)와 ‘사람 인’(人)의 어감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2008년 1월2일 &lt;조선일보&gt; 기사
2008년 1월2일 <조선일보> 기사

이번 대선 이후인 지난 3월21일치와 24일치 <한겨레>에는 각각 ‘당선자’ 호칭 관련 외부 칼럼이 실렸습니다. 김진해 경희대 교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는 “‘당선자’가 비판적 거리감 비슷한 느낌을 준다”면서도 “‘당선자’라 쓴다고 정론직필의 기사를, ‘당선인’이라 쓴다고 곡학아세의 기사를 쓴다고 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당선자 대 당선인’) 언어학자인 로버트 파우저는 ‘유권자’를 ‘유권인’으로 부르지 않는 것을 지적하면서 “‘당선인’은 민주주의 정신에도 어긋난다. 대통령의 품격만 따져 엄연한 말을 바꾼 것은 극도의 권위주의적 발상”이라고 했습니다.(‘‘당선자’를 다시 만나고 싶다’)

이에 앞서 <한겨레> 편집국 간부들은 대선 직전, ‘당선자’와 ‘당선인’ 중 어떤 호칭을 쓸 것인지를 두고 논의했습니다. 교열부는 ‘당선자가 원칙에 맞다’고 했고, 일부 정치부 출신 간부들은 ‘이젠 당선인이 더 통용돼 쓰이고 있다’고 했고, ‘호칭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체로 불리는 쪽에서 원하는 대로 써주는 게 맞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지방선거, 총선, 미국 대선에선 ‘당선자’라 쓰면서 유독 대통령에 대해서만 ‘당선인’이라 쓰는 건 올바른 언어 표기가 아니라는 반론도 있었습니다. 또 ‘대통령직 인수법’, ‘인사청문회법’, ‘공직선거법’ 등에선 ‘당선인’으로 돼 있지만, 상위법인 헌법에서 ‘당선자’로 명명하고 있기에, ‘당선자’가 맞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과거 논쟁, 관련 법률 등을 찾아보고, 논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당선자’로 정한 뒤, 선거 당일 오후 3시께 각 부장들로 구성된 편집위원회에 통보했습니다. ‘당선자’, ‘당선인’을 놓고 대선 전에 이 정도 논의를 한 적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일각에서는 이런 오해를 하기도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당선자’ 표기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닌가 하는. 이번 ‘당선자’ 표기 결정은 선거 결과가 나오기 전에 논의됐으며, 정치적 고려는 없었음을 말씀드립니다.

지난번 우크라이나 수도 표기를 ‘키예프’에서 ‘키이우’로 바꿀 때도 짧은 안내를 했는데, ‘대통령 당선자’ 표기 관련 주요 결정사항을 이처럼 뒤늦게 전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다음 칼럼 순서인 3주 뒤에는 대통령 부인의 ‘씨-여사 호칭’에 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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