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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가짜 마라토너’로 죽다

등록 2022-04-21 18:05수정 2022-04-22 02:39

[나는 역사다] 로지 루이스(1953~2019)

2시간31분! 1980년 보스턴마라톤에서 여성 미국신기록을 세운 사람은 놀랍게도 로지 루이스라는 신인이었다. 4월21일의 일이었다. 스타가 탄생한 걸까?

글쎄, 수상한 점이 너무 많았다. 신인은 신인인데 지나친 신인이었다. 마라톤 경기는 이번이 딱 두번째라고 했다. 제대로 된 훈련도 해본 적이 없는 듯했다. “어떻게 기록을 단축한 거죠? 인터벌 트레이닝을 격하게 했나요?” “인터벌이 뭔지 몰라요.” “누가 코치세요?” “코치는 없어요. 혼자 연습했어요.” 경기 직후의 인터뷰였다. “로지 루이스는 땀도 별로 안 흘렸어요. 뭔가 이상했죠.” 마라톤 우승자 빌 로저스의 회상이다.

이튿날 4월22일. 목격자 존 포크너는 신문에 실린 로지 루이스를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결승선을 800미터 앞두고) 관중 속에서 튀어나오는 사람을 봤어요. 선수처럼 보이지 않았어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상을 받았다니 믿을 수 없네요.” 로지 루이스가 뛴 첫번째 대회는 1979년 뉴욕마라톤이었는데, 그때는 중간에 지하철을 탔다는 목격자 증언이 나왔다. 누가 봐도 수상한 정황이었다.

내가 궁금한 것은 그다음에 일어난 일이다. 로지 루이스는 끝끝내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나는 조금의 의심도 없어요. 내가 한 일을 내가 알아요. 언젠가 다시 내 실력을 입증해 보이겠어요.” 자기가 정말로 마라톤을 완주했다고 믿었던 걸까? 일주일 만에 상을 박탈당했지만,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그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도 않았다. 어째서 이런 사기를 저질렀는지 역시 우리는 알 수 없으리라.

“루이스가 잘못을 인정했다면 모든 논쟁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죠. 남은 생애 내내 그는 이 사건으로부터 뛰어 도망쳐야 했어요.” 로지 루이스를 인터뷰한 방송인 밥 로벨의 회고다. 루이스에게 ‘우승’을 도둑맞았던 캐나다 선수 자클린 가로는 루이스의 궂긴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실수를 하죠. 어쩌면 마음 한구석으로는 자기도 찜찜했을지도 모르죠. 그가 (죽기 전에) 스스로를 용서했기를 나는 바라요. 나는 그를 용서했어요.”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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