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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10~2022, ‘리버럴 벨에포크’의 종언

등록 2022-06-08 18:19수정 2022-06-09 02:39

6·1 지방선거가 치러진 지난 1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개표상황실이 마련된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 당 지도부와 관계자들이 개표방송 시청 후 자리를 비워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6·1 지방선거가 치러진 지난 1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개표상황실이 마련된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 당 지도부와 관계자들이 개표방송 시청 후 자리를 비워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편집국에서] 이세영 | 전국부장

“들었어? 출구조사가 딱 붙었대. 이러다 우리, 정말로 이겨버리는 거 아냐?”

개표상황실로 들어서는데 얼마 전 안면을 튼 또래 당직자 한명이 달뜬 표정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하루 전만 해도 참패를 예상하며 전직을 고민하던 그였다. 하지만 중앙당이 미리 입수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어떻게 전해 들었는지 만면에 희색이 가득했다. 저녁 6시, 서울을 시작으로 시·도별 출구조사 결과가 화면을 채우기 시작했다. “우와.” “됐어.” 상황실 곳곳에서 환호와 탄성이 터져 나왔다.

국민의힘이 압승한 6·1 지방선거 결과를 보고, 나는 12년 전 그날의 서울 영등포 민주당사 풍경을 떠올렸다. 시간이 흐른 뒤 명확해졌지만, 민주당에게 그날은 10년 넘게 지속될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의 시작점이었다. 그날 민주당은 텃밭인 호남에 더해 인천, 강원, 충남, 충북에서 승리하고 경남·제주에선 친민주당 무소속 후보를 당선시켰다.

2010년 6월에 시작된 민주당의 ‘대세 상승’은 2012년 대선 패배로 한차례 조정 국면을 거쳤을 뿐, 2012년 총선, 2014년 지방선거,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를 거쳐 2020년 총선까지 이어졌다. 이를 통해 민주당은 청와대 권력, 지방 권력에 이어 압도적 의회 권력까지 손에 넣었다. 민주당이 ‘뿌리’로 내세우는 ‘1955년 민주당’ 탄생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물론 민주당의 힘으로만 일군 성과가 아니었다. 열린우리당 시절이던 2004년 총선 승리를 끝으로 민주당은 전국 단위 선거에서 족족 참패하며 ‘승리의 디엔에이(DNA)’ 자체가 멸실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명박 집권 1년차를 거치며 진보·리버럴에 우호적인 유권자 지형과 정당 체제, 국제 정세의 판이 깔렸고, 이듬해인 2009년 노무현·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죽음으로 만들어진 ‘애도 정국’이 정치적 스파크를 일으키며 반전 동력이 형성됐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는 20~40대 연령층을 견고한 ‘반이명박 정서’ 아래 결집시켰다. 그해 가을 밀어닥친 금융위기는 전세계적인 신자유주의의 퇴조와 복지국가 담론의 부활을 불러왔는데, 그 결과 등장한 것이 ‘무상 시리즈’로 상징되는 보편복지 정책, 이를 매개로 한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연대 체제다. 2010년 지방선거를 통해 민주당의 명실상부한 주류로 자리잡기 시작한 86세대가 이런 연합의 단단한 고리 구실을 했다. 이후 과정은 우리가 목격한 바대로다. 연합의 성과는 2016년 촛불시위와 박근혜 탄핵, 2017년 문재인 정권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2018년 지방선거 압승에서 행정·입법·지방을 아우르는 ‘선출 권력의 장악’을 완결지었다.

하지만 모든 내리막이 정상에서 시작하듯, 위기와 몰락의 징후들이 권력의 정점에 도달한 그 순간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만과 탐욕, 독선과 도덕불감이 상승기의 당을 떠받치던 관용과 성찰, 절제의 미덕을 밀어냈다. 민주당 안에서 ‘20년 집권론’이 흘러나온 것도 이즈음이다. 이 응축된 위기의 에너지가 폭발한 사건이 ‘조국 사태’라는 미증유의 내전이었다. 조국 사태의 전선은 ‘진영과 진영 사이’에만 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진영의 울타리 안에서도 흉기가 된 말과 글로 사생결단의 육박전을 벌였다. 적보다 어제의 동지를 미워하고, 위악의 망루와 자기연민의 참호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총검을 들이대는 비릿한 살풍경이 도처에서 펼쳐졌다. 결과는 진보·리버럴·중도를 아우르는 ‘반기득권 포퓰리스트 연합’(촛불동맹)의 붕괴였다.

이런 점에서 2020년 총선은 ‘민주당의 압승’이라기보다, ‘코로나 팬데믹’이란 비상사태 국면에 민심의 법정이 내린 ‘정치적 판단유예’에 가까웠다. 하지만 민주당은 결과에 자만했고, 바닥에서 꿈틀대는 변화의 흐름에 대처할 마지막 기회를 걷어차고 말았다. 2022년 6월, 참패의 예감 속에 지방권력의 지형은 ‘2010년 이전’으로 돌아갔다. 지방선거로 시작해 지방선거로 막 내린 ‘리버럴 벨에포크’(2010~2022)의 종말.

지금 민주당의 계절은 가을이다. 가을은 한 시대의 조락을 의미하는 동시에, 시대가 품어온 정신의 본질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시기다. 민주당은 결단해야 한다. 썩은 열매를 떨궈 새 시대의 씨앗을 남길 것인가. 한여름밤의 미망에 사로잡혀 혹독한 겨울을 맞을 것인가.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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