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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겉으로는 자유여, 외쳐대면서도

등록 2022-06-15 19:28수정 2022-06-16 02:41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편집국에서] 김진철 | 경제산업부장

정권 바뀐 지 한달 남짓, 격세지감을 느낀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결정적 장면은 5월24일 연출되지 않았나 싶다. 삼성그룹이 예고 없이 투자계획을 깜짝 발표하더니 여타 그룹들도 줄줄이 그 대열에 따라나섰다. 한국 대표 기업들이 윤석열 정부 5년간 도합 1천조원이 넘는 돈을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입이 벌어질 만큼 놀라웠던 건 그 천문학적 액수뿐 아니라 기업들의 태도였다.

문득 떠오른 장면은 3~4년 전,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어색한’ 만남이었다. 2019년 들어 보름에 한번꼴로, ‘촛불’이 만든 정부의 수뇌와 그 불에 크게 덴 재벌 3세가 얼굴을 맞대고 손을 맞잡았으니 자연스러운 만남이라기에는 의아했다. ‘재벌개혁’을 중요 과제로 내세운 대통령이 개혁 대상을 애써 만난 것만 봐서는 어느 쪽이 더 매달리고 어느 쪽이 조금이라도 더 여유로웠는지 가늠하기 쉽지 않을 수 있겠다. 시시때때로 총수 행보에 발맞춰 삼성은 투자계획을 내놨다는 데서 작은 힌트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이번엔 많이 달라 보인다. 잇단 투자 발표 뒤,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윤석열 정부와 재계단체, 이른바 보수언론이 ‘규제개혁’으로 화답하라고, 화답하겠다고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설마 ‘짜고 치는 고스톱’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맞추기도 쉽지 않겠다 싶을 만큼 절묘한 것은 사실이다.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 취임식 당일부터 다주택자 양도세율을 대폭 낮췄다. 윤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이 부회장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고 뒤이어 삼성의 투자·고용계획이 발표됐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계 인사들을 만나 법인세·상속세를 줄여주겠다고 약속하고, 대한상의·경총·전경련 등은 하루가 멀다 하고 요구사항을 내놓고 있다. 그럴 리 없겠지만 누군가 ‘큐’ 사인이라도 보내는 게 아닐까 넘겨짚게 될 만큼.

그들만의 축제 기운이 짙어가는데 다른 쪽에선 무서운 말들이 몰려온다. ‘퍼펙트 스톰’이니 ‘허리케인’이니 떠들 만큼 거대한 비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물가와 금리가 오르는 터에 평범한 시민들은 두렵다. 대출 규제를 푼다지만 고금리를 감당할 ‘강심장’은 별로 없어 보인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뛴 상황에서 전셋값마저 오르니 남는 것은 반전세나 월세 전환뿐이다. 연일 오르는 품목은 닭고기·돼지고기에 휘발유·경유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서민들의 불안은 공포로 번져간다. 화물연대 파업은 안전운임제 일몰이 핵심 이슈이지만 더 깊은 곳에는 연료가격 급등이 놓여 있다. 인플레이션은 실질임금을 떨어뜨린다. 서민들만 죽을 지경에 몰리고 있다.

금리인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효과가 더디고 미약하다 해서 손 놓고 있다가는 인플레이션이 더욱 거대한 폭풍으로 몰아칠 것이다. 결국 죽어나가는 것은 서민과 취약계층일 뿐이다. 이럴 때 정부의 존재 이유가 도드라진다. 시민 생존권을 보장하는 것은 정부의 의무다. 재정정책으로 도탄에 빠진 시민들을 살리기 위한 안전망을 보수해야 할 때다. 세금을 줄일 게 아니라 더 거둬야 할 판이다. 이런 상황에서 법인세와 상속세를 줄이고 주식양도세를 폐지하겠다는 것은, 논리적 타당성이 없을뿐더러 정부가 의무를 다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생계를 위협받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안타깝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취임사에서 수십차례 ‘자유’를 외친 윤 대통령이 27년간 밀턴 프리드먼을 끼고 다녔다고 하니, ‘민간 주도 경제’라는 괴이한 말이 유행어가 된 연유가 짐작된다. 시장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면 자율조정 기능이 원활히 작동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수많은 서민과 취약계층이 고통 속에 허우적댄다면 그런 자율조정을 기꺼이 수용해야 할까.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서른다섯번 외친 자유는 대체로 돈 많고 힘센 이들의 전유물인 것이 명백해지고 있다. 그렇기에 시인의 통찰은 격세지감으로 뼈아프게 느껴진다. “겉으로는 자유여, (…) 외쳐대면서도/ 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 제 자신을 속이고서.”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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