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
한때는 자본주의의 단점을 보완하는 모델이라 이야기되던 케인스주의. 영국의 경제사상가 존 메이너드 케인스에 관해서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다. 거짓말 같은 사실들이다. 열살에 이차방정식을 떼고 라틴어 서사시와 산문을 읽었다나. 철학에 조예가 깊었고 예술가 친구를 두루 사귀었다. 학교에서 경제학을 배운 것은 고작 여덟주. 재무부 공무원을 하며 몸으로 경제를 익혔다. 경제학자면서 투자와 투기로 큰돈을 번 드문 인물이기도 하다.
결혼 뒷이야기가 흥미롭다. “더 늦기 전에 언니가 케인스의 결혼을 말려야 해.” 결혼하면 속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러다가 장관이나 되어 공작과 총리 따위 만나며 살겠지.” 이 ‘매운맛' 편지를 쓴 사람은 누굴까? 유명한 작가 버지니아 울프다. 케인스가 젊어서 남성을 사랑한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여성과 결혼하면 불행할까봐 걱정했다. 그런데 웬걸, 케인스는 아내 리디야와 두고두고 행복했다. 울프의 예측이 빗나간 셈(케인스는 장관이 되기 전 공무원도 그만뒀다).
‘방코르'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영국 대표로 미국 땅 브레턴우즈를 갔다. 전쟁 뒤 세계의 경제질서를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브레턴우즈 회의가 열린 날이 1944년 7월1일. 케인스는 ‘방코르'라는 가상 화폐를 만들어 나라끼리 돈을 주고받을 때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미국 쪽에서 방코르에 반대했다. 미국 돈 달러를 나라끼리도 주고받자고 밀어붙였다. 이렇게 해서 미국의 달러는 세계의 기축통화가 되었다. 1945년에 영국 정부는 미국 차관을 얻어오기 위해 다시 케인스를 미국에 보냈다. 협상은 어려웠고 케인스는 건강이 상했다. “위대한 영국을 파산한 기업 취급 하다니 (미국은) 무례하네요.” 이듬해 케인스는 세상을 떠난다.
‘달러의 위기'라는 말이 나오는 요즘, 방코르가 다시 주목받는다. “케인스는 무역분쟁 및 환율 문제가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까 걱정했다. 또 특정 국가(미국)의 경제위기가 다른 국가로 번지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송인창, 이경석, 성진규가 함께 지은 책 <저도 환율은 어렵습니다만>에 나온 설명이다. 어떤 사람은 비트코인이 방코르의 역할을 하면 어떨까 기대하는 것 같은데, 상상은 즐겁지만 현실은 어렵지 않을까.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