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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죽음의 문턱서 돌아와 서양 고전 번역에 온 몸을 바치다

등록 2022-07-07 18:03수정 2022-07-08 02:39

[나는 역사다] 천병희(1939~)

그리스어나 라틴어로 된 서양 고전을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오가는 이야기가 있다. “이 문헌을 우리가 우리말로 옮기면 좋겠네.” “음, 그 사이에 천병희 선생님 번역이 먼저 나오지 않을까?”

천병희 선생은 1972년부터 원전 번역을 시작했다.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변신 이야기>, <플라톤전집> 등 수많은 고전을 우리말로 옮겼다. 놀라운 업적이다. 고전 번역은 한번에 많은 양을 하기 어렵다. 한줄 한줄 까다롭고 찾아볼 주석도 많기 때문이다. 2009년 인터뷰에서 선생은 “하루 평균 50~60행 정도를 번역한다”고 밝힌 바 있다. “중간에 밥 먹고 차 마시고 쉬는 시간을 빼면 날마다 6시간 정도 작업”한다고.

한국어로 번역된 서양 고전 문헌을 보면 선생 이름이 가득하다. 그래서 고전에 관심 있는 사람은 천병희 선생의 이름을 모를 수 없다. 그런데 선생이 한때 감옥에 갇히고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적다. “(감방에서) 자고 있으면 구더기가 막 올라와요. ‘내가 살아야겠다, 살아서 할 일이 있다’ 결심을 했어요.” 원전을 번역하겠다는 결심이었다.

남한과 북한이 분단되고 십여년밖에 되지 않았던 1960년대. 독일에 있던 유학생들은 동독을 통해 북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때 동독과 서독은 부활절 등에 자유롭게 교류하고 있었어요. 북한 사람을 만나는 게 어마어마한 죄가 될 줄 몰랐죠.” 한국에 돌아와 학생을 가르치던 중, 선생은 잡혀 들어갔다. 이른바 ‘동백림사건’(백림은 베를린의 옛날 표기)이 터진 날이 1967년 7월8일이다.

선거를 앞둔 박정희 정권의 ‘간첩단 조작 사건', 요즘 사람은 동백림사건을 이렇게 기억한다. “이 사건으로 서른명 이상이 재판을 받았지만 간첩죄로 유죄를 받은 이는 한명도 없었다.” 요즘 사람은 또한 천병희 선생을 위대한 고전 번역가로 기억한다. 나 역시 선생이야말로 고전의 힘으로 현대사의 비극을 이겨낸 진정한 승리자라고 말하고 싶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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