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다] 파블로 에스코바르(1949~1993)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 코카인을 판 돈으로 국회의원 자리를 잠시 꿰차기도 했다. 용감한 사람들이 과거를 들춰 정치판에서 쫓겨나자, 그들을 죽였다. 1989년 대선 때는 갈란 후보를 죽였다. 가비리아 후보가 탈 비행기는 폭파시켰다. 우연히 그날 비행기를 타지 않은 가비리아는 살아남아 대통령이 됐으나 애꿎은 민간인 백여명이 죽었다.
세계 최대 마약 카르텔인 메데인 카르텔의 보스 에스코바르의 거취는 국제적 관심사였다. 1989년 9월 <한겨레>에 눈길을 끄는 관련 기사가 났다. “콜롬비아 정부가 파블로 에스코바르 등 10여명이 해외로 잠적했다는 정보와 함께 명단을 우리 정부에 통보해왔다. 정부는 콜롬비아와 우리나라가 무비자협정을 맺고 있어 (에스코바르가) 위조여권을 사용해 국내에 잠입해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전국 수사기관에 (상황을) 파악하도록 지시했다.”
에스코바르는 한국에 오지 않았다. 콜롬비아에서 떵떵거리며 살고 있었다. 1990년에는 <포브스>지에서 선정한 세계 100대 부자에 들기도 했다. 1991년에 자수했다. 조건이 있었다. 자기가 살 감옥을 자기가 짓고 자기가 관리하겠다고 했다. 호사스러운 감옥에 살며 에스코바르는 마약 거래와 살인 범죄를 지시했다. 보다 못한 정부가 일반 감옥으로 그를 옮기려 하자 에스코바르는 탈옥했다. 1992년 7월22일이었다.
“수도 보고타의 쇼핑센터 부근에서 강력한 차량 폭탄 공격이 일어나 적어도 15명이 숨지고 200명 이상이 다쳤다고 콜롬비아 경찰이 밝혔다.” 1993년 4월 <한겨레> 기사다. “콜롬비아 정부와 경찰은 올해 들어 최소 52명 이상의 인명을 앗아간 일련의 차량 폭탄 공격을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그해 말 보안군은 에스코바르를 사살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나르코스>와 다큐멘터리에도 나오는 사건이다. 에스코바르가 죽어 문제는 해결됐을까? “콜롬비아에서 내란이 발생한 중요 원인은 2차 대전 뒤에 미국에서 코카인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었다.” 2022년 7월 <한겨레> 기사다. “콜롬비아의 마약 문제는 여전하다. 1990년대 초반보다 4배나 많은 코카인이 생산되고 있다.”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