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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엘리자베스 여왕’의 경쟁자, 스코틀랜드 여왕이 되다

등록 2022-09-08 18:11수정 2022-09-09 02:38

[나는 역사다] 스튜어트 왕가의 메리 1세(1542~1587)

스튜어트 왕가의 메리 여왕만큼 화려한 출발을 한 사람이 또 있을까? 세개의 왕관을 곁에 두고 태어났다. 1543년 9월9일, 생후 아홉달 만에 대관식을 하고 스코틀랜드 여왕이 됐다. 열다섯살에는 프랑스의 왕위 계승권자와 첫번째 결혼을 했다. 남편은 곧 왕관을 썼다. 프랑수아 2세 임금이다. 얼마 못 가 숨을 거두지만.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는 잉글랜드 왕위 계승권자이기도 했다. 보기에 따라 엘리자베스 1세가 메리 대신 임금이 됐다고도 할 수 있다. 헨리 8세의 이혼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두번째 결혼에서 낳은 딸 엘리자베스는 혼외 자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톨릭의 교황청은 헨리의 이혼을 인정하지 않았다. 메리 역시 가톨릭이었다. 메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프로테스탄트인 엘리자베스는 왕좌를 위협받았다.

메리는 세개의 왕관을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 스코틀랜드로 돌아와 두번째 결혼을 했지만 남편 단리와 사이가 나빴다. 남편이 암살당하자 메리 여왕이 배후로 의심받았다. 얼마 뒤 단리 암살에 가담한 보스웰 백작에게 납치당했다. 세번째 결혼식을 치렀다. 스코틀랜드 귀족들은 ‘남편 살해범과 결혼했다’는 구실을 잡아 내전을 일으켰다. 임금 자리에서 쫓겨난 메리는 1568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다스리던 잉글랜드로 망명한다. 천덕꾸러기 손님이었다.

“이 세상의 행운이란 무엇이오? 이 여왕이 얼마나 추락한 것이오.” 독일의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는 역사극 <메리 스튜어트>를 썼다. 연극 속 엘리자베스는 말한다. “인생과 정치에 지쳤소. 우리 두 여왕 중 한명이 죽어야 다른 한 사람이 살겠지.” 시인은 이것이 “왕들의 저주받은 운명”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잉글랜드 정부가 메리를 함부로 죽일 수도 없었다. 가톨릭 나라들이 프로테스탄트 나라 잉글랜드를 쳐들어올 테니 말이다. 메리 여왕을 가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이십년을 끌었다.

1587년이 되어서야 엘리자베스는 메리 여왕의 처형에 동의했다. 메리의 목이 잘리기를 기다렸다는 듯 1588년 가톨릭의 나라 에스파냐는 잉글랜드를 공격할 배들을 띄웠다. 무적함대라 알려진 ‘아르마다’였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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