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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영화판에 뜬 댓글부대

등록 2022-09-26 18:49수정 2022-09-27 02:38

영화 <비상선언>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영화 <비상선언>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편집국에서] 박미향 | 문화부장

애플 티브이(TV)플러스의 드라마 <세브란스: 단절>은 에이아이(AI) 주도 사회에 대한 공포가 ‘유령’처럼 떠도는 지금, ‘인간이란 무엇인가’란 근원적인 물음에 천착해 그 해답을 모색하는 수작이다.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교수 마크. 결국 자신의 기억을 삭제하고 거대기업 루먼에 입사한다. 근무시간 동안만은 고통에서 해방돼 다른 사람 ‘마크 에스(S)’로 살아간다. 퇴근 뒤 본래 자신으로 돌아온 마크와 일터에서 마크 에스는 같은 사람인 동시에 다른 사람. 그 간극과 그로 인한 균열은 미스터리한 복선과 연결되며 극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절제된 서사가 만든 흡입력은 가히 압도적이다.

씨제이이엔엠(CJ ENM)의 글로벌 스튜디오 엔데버 콘텐트가 제작한 이 드라마는 제74회 에미상에 작품상 등 주요 부문에 수상 후보로 올라 <오징어 게임>과 트로피 경쟁을 벌였다. 에미상에선 ‘최우수 메인타이틀 디자인상’ ‘시리즈부문 최우수 음악작곡상’만 받았지만, 앞서 8월에 열린 할리우드 비평가협회 티브이(TV)어워즈에선 주요 상을 휩쓸며 5관왕을 차지했다. 아무리 권위 있는 상을 많이 받았다지만, 그래 봤자 한국인들에겐 낯선 드라마다. 하지만 최근 이 드라마가 영화평론 전문가들과 영화 유튜브 채널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새삼 주목받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 콘텐츠 분야에서 입소문은 중요한 흥행 포인트다. 대스타도 없고 그럴싸한 액션신도 없는, 제작비가 고작 50억원 든 신생 홈초이스의 영화 <육사오>가 여전히 극장에 걸려 있는 데는 ‘뜻밖에 재밌다’는 입소문이 주효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비단 영화뿐만 아니다. 생소한 채널 <이엔에이>(ENA)를 국민 채널로 만든 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몫이 컸다. 이 드라마 역시 입소문 효과를 톡톡히 봤다. 현실이 이러하니, 영화 제작사들은 입소문에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현대사회에서 입소문이란 결국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지는 여론을 말한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입소문의 발원지이자 확대재생산의 주요 창구인 셈이다. 이런 이유로 다수의 유저를 확보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악평이 오르면 흥행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위력을 지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악한 의도를 가진 집단이 특정 목적으로 불순한 ‘작업’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제작사의 금전적 손실은 둘째 치고, 콘텐츠 시장은 단박에 혼탁해질 것이다.(신뢰가 깨진 맛집 평가 블로거들의 사례를 보자) 그 무엇도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없게 된 시장은 결국 강자만이 권력을 행사하는 지옥이 될 게다. 장기적으론 <오징어 게임>으로 승기를 잡은 케이(K)콘텐츠에도 악영향을 미칠 게 뻔하다.

최근 한국 영화판에 이런 악성 역바이럴 의혹이 제기됐다. <비상선언>의 투자배급사 쇼박스는 <비상선언> 개봉을 전후로 온라인에 게시된 글과 평점을 확인한 결과 “사적인 이익을 목적으로 한 세력이 영화에 대한 악의적 평가를 주류 여론으로 조성하고자 일부 게시글을 특정한 방식으로 확산 및 재생산해온 정황들을 발견했다”며 지난 21일 서울경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악의적 바이럴 기술도 점차 교묘해져서,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취향 콘텐츠인 영화는 부정적인 평이 어디선가 튀어나올 수 있다. 소수가 참여하는, 영향력 없는 비주류 커뮤니티에 단 한줄의 부정적인 평이나 그와 유사한 의견이라도 올라오면, 그걸 수십만 수백만 유저가 활동하는 주류 커뮤니티 여러 곳에 올려, 마치 대세인 것처럼 여론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런 정황이 이번 <비상선언> 역바이럴 사태에서 감지된 것이다.

경찰은 조속한 조사를 통해 진실을 명명백백히 밝혀, 처벌이 필요한 경우라면 단호히 조처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케이콘텐츠 세계화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이번 사태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 이런 의도적인 악성 바이럴이 우리 영화의 질을 떨어트릴 게 자명하기 때문이다.

2015년 작가 장강명은 대통령 선거 때 인터넷 사이트들에 잠입(?)한 댓글부대를 소재로 한 소설을 발표했다. 현실과 오버랩되는 소설의 내용은 공포 그 자체였다. 영화판에 소설 속 댓글부대가 활보해서는 안 될 노릇이다.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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