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슬기로운 기자생활] 단골 취급은 부담스러워?

등록 2022-10-13 18:22수정 2022-10-14 02:38

마포구청이 ‘모아타운’ 공모에 신청한 서울 마포구 합정동 일대 거리. 이우연 기자
마포구청이 ‘모아타운’ 공모에 신청한 서울 마포구 합정동 일대 거리. 이우연 기자

이우연 | 이슈팀 기자

지난해 논쟁 대상이 된 온라인 커뮤니티 글이 있다. ‘의외로 요즘 젊은이한테 있는 돌연변이 소비패턴.jpg’이라는 제목의, 가게 주인이 단골손님으로 취급하면 방문 빈도를 줄인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동지들이 댓글창에 있었다. 나 역시 카페 주인이 “저번에 드셨던 걸로 드릴까요 ?”라고 물으면 발길을 끊게 된다.

수많은 사람을 대면하는 직업이라 그럴까. 일과시간 대부분을 우연한 만남을 맞닥뜨려야 하는 긴장 속에 보내다 보니 퇴근 뒤에는 최대한 익명으로 살고 싶다. 엠비티아이(MBTI) 성격유형 검사에서 ‘극E형(외향형)’이 나오는 나를 아는 주변인들은 이 사실을 믿지 못하겠지만.

2022년 대한민국은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시공간이다. 새벽배송 플랫폼으로 식재료를 사고, 2주마다 계절에 어울리는 꽃 두종을 배송받는다. 이제는 옷가게에 들어가 직원의 일방적인 추천에 휘말려 마음에도 안 드는 옷을 강매당할 필요도 없다. 데이터가 취향을 기록해주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인스타그램 피드 사이로 마음에 드는 신발이 나타나는 바람에 카드결제 앱을 속절없이 눌렀다.

지난 9월 오픈 1주년을 막 넘긴 한 동네책방 주인이 취잿거리를 제보했다. 책방이 있는 마포구에서 서울시에서 추진 중인 ‘모아타운’이라는 재개발인 듯 재개발 아닌 재개발 사업 공모에 신청했다고 했다. 그런데 주민 동의도 없이 사업공모에 신청하는 것도 이상하고, 재개발이 이뤄지면 세입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책방을 주소에 쳐보니 ‘마포구 합정동’이 떴다. “거기가 어디야?”라고 물으면 “망원과 합정 사이”라는 애매한 답이 돌아오는, 최근 힙스터들의 성지가 된 ‘망리단길’ 근처였다.

며칠 뒤 얘기나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합정동을 찾았다. 책방에 앉아 주인에게 궁금한 걸 물어보는데 불쑥 다른 주제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내 얘기를 듣던 주인이 “마침 이 소설 주인공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며 소설집을 하나 건넸다. 자연스레 요즘 관심사를 얘기하게 됐고, 이야기를 마칠 때쯤 내 손엔 세권의 책이 들려 있었다. 인터넷 서점에선 발견하지 못한 책들이었다.

이어 그의 손에 이끌려 비건 타이 요리를 하는 식당과 사진스튜디오에 가서 세입자 사장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홍대와 이태원에서 밀려난 이들이 많았다. 이어 동네 자영업자들의 사랑방이라는 한 카페에서 더 많은 주민을 만날 수 있었다. 몇시간 머문 것만으로도 그곳 주민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최근 끊다시피 한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하마터면 책방 주인이 하고 있던 목걸이를 파는 액세서리 공방과, 책방 한쪽에 놓인 꽃을 파는 꽃집까지 갈 뻔했으나 다행히 그쯤에서 멈췄다.

그날 처음으로 어딘가에서 단골 대우를 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세심한 배려를 받은 기억이 없어 단골 취급을 부담스러워했던 걸까. 계산대 앞까지 왔을 때만 말을 건다는 책방 주인의 철학을, 산미를 싫어한다는 말에 고소한 원두를 오래 볶아주던 카페 주인의 배려를 느끼며 단골 되는 마음을 이해했다. 콜과 콜 사이 찰나 카페에 들러 “늘 마시던 에티오피아 커피요”라고 말하던 라이더를 보면서 생각했다. 자신의 동네에서 서로에게 기억되고 있다는 감각, 그것이 비대면·구독경제 시대에 우리가 잊고 있던 ‘생활’이 아니겠냐고.

그로부터 일주일 뒤, 짧은 사업기간으로 언제 쫓겨날지도 모르는데 불투명한 세입자 보상 대책으로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합정동 세입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기사가 신문에 나갔다. 늦은 저녁 서울시 공무원으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기자님. 왜 모아타운만 가지고 그러세요. 서울시를 비난하고 싶으신 거예요?”

단언컨대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저 기꺼이 서로가 ‘단골 됨’을 자처하는 한 동네의 풍경이 이렇게 사라지는 걸까 하는 씁쓸함이 전부였다. 화를 내던 공무원에게 이 감정을 세련되게 설명할 재간은 없었기에, 이렇게 몇주 뒤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쓸 뿐이다.

azar@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그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뉴스룸에서] 1.

그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뉴스룸에서]

학교예술강사 예산 72% 삭감…‘K-컬처’ 미래를 포기하나 [왜냐면] 2.

학교예술강사 예산 72% 삭감…‘K-컬처’ 미래를 포기하나 [왜냐면]

[사설] ‘김건희’ 위해 “돌 맞고 가겠다”는 윤 대통령 3.

[사설] ‘김건희’ 위해 “돌 맞고 가겠다”는 윤 대통령

윤석열 부부가 모르는 것 한가지 [강준만 칼럼] 4.

윤석열 부부가 모르는 것 한가지 [강준만 칼럼]

‘지옥에서 온 판사’ 잘나가는 이유 [홍성수 칼럼] 5.

‘지옥에서 온 판사’ 잘나가는 이유 [홍성수 칼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