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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종교갈등 격랑 속 ‘프랑스 왕비’가 된 메디치 가문의 딸

등록 2022-10-27 18:31수정 2022-10-28 02:40

[나는 역사다] 카테리나 데메디치(1519~1589)

이탈리아의 명문 메디치 가문에서 태어나 프랑스 왕자와 결혼했다. 남편 앙리 2세에 이어, 프랑수아 2세·샤를 9세·앙리 3세 아들 셋이 연달아 프랑스 왕위에 올랐다. 화려하고 행복한 인생 같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남편도 아들들도 일찍 죽었다는 뜻이니까. 유명한 점술가 노스트라다무스를 가까이 두고 후원한 이유다.

16세기는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 갈등으로 온 유럽이 몸살을 앓을 때였다. 카테리나 데메디치는 가톨릭 강경파였다. 메디치 가문 출신 교황 레오 10세와 클레멘스 7세가 작은할아버지였다. 1533년 10월28일 카테리나 데메디치는 프랑스 왕자 앙리와 결혼한다. 교황 클레멘스 7세가 주선한 정략결혼이었다. 프랑스 왕가가 가톨릭 세력의 뒷배를 봐줬기 때문이다.

당시 카테리나 데메디치를 따라간 이탈리아 요리사가 피렌체로부터 프랑스에 세가지를 전해주었다나. 첫째가 아이스크림, 둘째가 포크(그 전까지 알프스 북쪽 사람들은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었다고 한다), 세번째가 요리. 프랑스 사람들은 적어도 세번째는 선뜻 동의하지 않는 것 같다. 프랑스 요리의 원조가 이탈리아라는 이야기라서 그렇다.

종교 갈등 때문에 며느리가 목숨을 잃었다. 스튜어트 가문에서 난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는 프랑수아 2세의 왕비였고 가톨릭 교인이었다. 잉글랜드에서 엘리자베스 1세의 개신교 정권 때 처형당했다.

사위는 자기 손으로 죽일 뻔했다. 부르봉 가문에서 난 나바르 왕 앙리는 개신교(위그노) 사람이었다. 카테리나 데메디치의 딸 마르그리트 공주와 결혼하러 1572년에 파리에 왔다. 프랑스 개신교 정치 지도자들이 신랑 쪽 하객으로 모여들었는데, 가톨릭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쳐들어가 죽였다. 이른바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이다. 학살 배후가 카테리나 데메디치라고 사람들은 수군댔다. 사위 앙리는 겨우 목숨을 건졌다.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와 프랑스 공주 마르그리트의 이야기는 일전에 칼럼에서 다룬 바 있다.

70살까지 장수했지만 그의 말년은 쓸쓸했다. 그가 숨지고 8개월 뒤 아들 앙리 3세가 암살당하며 프랑스의 발루아 왕조는 막을 내렸고, 사위 앙리가 새 왕이 돼 부르봉 왕조를 열었다.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 싸움을 봉합한 것으로 유명한 앙리 4세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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