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골목길에 쳐놓은 폴리스라인을 걷어 낸 뒤 첫 주말을 맞은 지난 1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호텔 옆 골목길에 추모객들이 오가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② 불가피하면 문자메시지로 보고하고 반드시 읽었는지 확인하자
③ 윗사람이 보고를 받았는지 확인이 늦어지면 지체 없이 그다음 사람에게 보고하자. 신입사원이 첫 당직 근무할 때 알려준 근무 수칙이었으면 좋겠다. 이 3단계 보고체계는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으로 질타를 받은 경찰이 18일 즉시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경찰 대혁신 과제’ 9가지 중 하나다. 신입사원도 알 만한 당연한 보고체계를 경찰이 이제야 3단계로 매뉴얼화한다는 게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믿기지 않는다. 이는 참사 당일 윤희근 경찰청장이 근무하던 경찰청 상황담당관으로부터 늦게 보고받았던 게 직접적인 배경이 됐다. 당일 상황을 복기하면, 주말이던 지난달 29일 윤 청장은 충북의 한 캠핑장에서 밤 11시 취침했다. 이용욱 경찰청 상황담당관(총경)은 11시32분 윤 청장에게 ‘이태원 인명 사상 사고’를 내용으로 ‘문자 보고’했다. 윤 청장에게 답이 오지 않자, 이 총경은 20분이 지난 11시52분에 전화를 걸었다. 윤 청장은 전화를 받지 못했다. 윤 청장은 0시14분에야 이 총경으로부터 전화로 상황을 보고받고 5분 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게 총력 대응하라는 긴급 지시를 내렸다. 119에 첫 압사 신고가 들어간 시각이 밤 10시15분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첫 보고 시점도 이미 1시간 넘게 늦었지만 문자 보고 등으로 윤 청장이 참사를 인지하기까지 더 지연된 셈이다. 이 총경은 현재 대기 발령된 채 감찰을 받고 있다. 이날 경찰이 발표한 9가지 과제엔 유형별·단계별 인파관리 매뉴얼 제작 등도 담겼다. 참사 직후 핼러윈 축제가 ‘주최 없는 행사’라 누구도 관리 주체가 없어 안전 관리에 공백이 있었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주최 여부와 관계없이 대규모 인파가 몰릴 행사에 대한 인파관리 매뉴얼을 별도로 만든다는 설명이다. 1차 회의 때 나온 과제만 9가지니 앞으로 경찰은 숱하게 많은 매뉴얼을 추가로 만들 것 같다. 보고체계든 인파관리든 매뉴얼이 있다면 위급 상황 때 개인의 즉각적인 판단에 분명 도움은 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상황에서 또 다른 ‘구멍’이 발견되면 어떻게 할까. 그때 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비판이 파도처럼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아 새로운 매뉴얼을 땜질할 수밖에 없을까. 모든 상황에 대한 100%의 매뉴얼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매뉴얼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또 다른 버전의 사각지대를 낳을 수밖에 없다. 각자의 자리에서 개개인은 무엇이 중요한지 ‘가치 판단’을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구멍’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체화된 직업 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주말 늦은 밤이라는 조건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인파에 밀려 사망자가 나온 상황에서 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지, 문자메시지로 보고할지 머뭇거릴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경찰관직무집행법상 제1의 직무가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라는 걸 체화했다면 말이다. 용산경찰서 정보관이 ‘핼러윈 축제 기간 안전사고 우려’ 보고서를 올렸을 때 ‘신고된 집회도 아니고 주최도 없는 행사’라며 무시할 게 아니라, 조직 내 경고는 해야 했다. 경찰 정보 조직의 존립 근거는 ‘공공안녕에 대한 위험의 예방과 대응’(경찰관직무집행법)에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를 쓴 직원이 직전 부서에서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썼다는 게 ‘보고서의 무용함’의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부끄럽게도 다른 기관에만 향한 비판은 아니다. 이태원 참사 직전 많은 인파가 이태원에 몰릴 것을 예상했으면서도 안전 관리 중요성에 대해 스스로 기자의 자리에서 기록하지 못한 것이 뼈아프다. 남은 기자 생활 동안 두고두고 후회가 될 것 같다. 또다시 비슷한 이유로 반성만 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제 자리부터 돌아보겠다. 마음을 다해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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