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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불만의 겨울

등록 2023-02-02 18:26수정 2023-02-03 02:35

지난 1월16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다우닝가에서 영국 정부의 파업 관련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파업할 권리를 보호하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런던/EPA 연합뉴스
지난 1월16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다우닝가에서 영국 정부의 파업 관련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파업할 권리를 보호하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런던/EPA 연합뉴스

[크리틱] 정영목 | 번역가·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이제 우리의 불만의 겨울을/ 요크의 이 태양이 찬란한 여름으로 바꾸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3세>는 리처드의 이런 독백으로 시작한다. 요크와 랭커스터 두 가문의 왕위쟁탈전인 장미전쟁 시대를 살았던 리처드는 요크 가문 출신으로, 랭커스터 가문에 아버지를 잃고 절치부심 끝에 형과 함께 복수에 성공한다. 그 결과 그들이 고통을 겪던 “불만의 겨울”은 여름으로 바뀐 것이다.

이번 겨울 영국에서 공공부문 파업이 거세게 번지자 “불만의 겨울”이 다시 왔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첫 “불만의 겨울”은 1978~79년이었다. 드문 추위 속에 전 산업에 걸쳐 파업이 벌어지자 저널리즘이 이 상황을 위의 구절에 나오는 “불만의 겨울”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1974년에 정권을 잡은 노동당 정부는 인플레이션과 싸우기 위해 임금인상을 최소한으로 유지했고 노동조합도 사회적 합의에 따라 실질임금 하락을 감내했다. 그 결과 20%가 넘던 인플레이션은 10% 정도로 떨어졌지만 실질임금도 15% 가까이 하락했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가 1979년에도 임금인상 상한선을 5%로 유지하려 하자 전 산업에서 그간 쌓인 노동자들의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고, 공공부문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이 “불만의 겨울”이 여름으로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는 20세기의 리처드는 누구였을까? 노동자들이 이로써 그간의 불만을 해소하고 여름을 맞이했을까? 영국 신민 일반은 어떨까? 1978년 11월 여론조사에서 노동당 지지율이 보수당보다 5%포인트 앞서다가 79년 1월에는 20%포인트 뒤진 것을 보면, 영국인 다수는 이때 노동당 정부에 불만을 품었던 듯하다. 그래서 그들이 정권을 바꿔 파업으로 인한 불편에서 벗어나고 여름을 맞이했을까? 어쩌면 이 겨울을 계기로 정권을 잡은 보수당이야말로 긴 겨울 끝에 여름을 맞이한 요크 가문이고, 가문에 풍파를 일으키며 왕위에 오르는 리처드의 배역은 총리가 된 마거릿 대처에게 가야 하지 않을까? “불만의 겨울”은 무엇보다도 ‘대처리즘’이라는 영국 신자유주의 성공신화의 무대로 도용됐기 때문이다.

대처는 노조의 힘을 누르고 사회복지를 축소하면서 노동유연화, 민영화, 규제완화 등 신자유주의의 원조 격인 정책을 추진했는데, 이것이 성공했던 것일까? 실업률이나 양극화 면에서야 좋은 결과를 기대하지도 않겠지만, 다른 지표상으로도 썩 긍정적인 답은 나오지 않는다. 뒤늦게 상승세를 보이던 성장률도 집권 말기에는 떨어졌고 인플레이션도 심해졌다. 아니 거꾸로, 신자유주의와 모순되는 인두세마저 도입할 만큼 지표가 나빠졌기 때문에 11년 집권이 끝난 것이다. 그럼에도 약자의 요구를 무시하고, 포클랜드 전쟁으로 저무는 제국의 애국주의적 허영심을 달래주고, 또 “사회는 없고 개인이 있을 뿐”이라는 그의 신자유주의적 이념이 동구권 붕괴로 증명된 것처럼 보이면서 대처리즘은 신자유주의의 어머니라는 신화적 자리에 올라 여름을 노래할 수 있었다.

그 여름이 지금도 찬란한지는 몰라도, 적어도 끝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대처의 성공신화가 지금까지 세계 여러 곳에서 복제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 증거다. 조건이 완전히 다른 곳에서 그 신화를 현실에 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환상일 텐데, 그럴수록 강하게 나가는 것이 대처를 본받는 것이라면 현실을 신화에 맞게 조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령 이미 기존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 수많은 사람을 사회적 지원에 의지하는 안이한 인간인 동시에 특권을 누리는 막강한 적으로 간주해야 한다. 그래서 풍차를 거인으로 간주하고 자신을 대처로 착각한 돈키호테처럼 창을 휘둘러 대는데, 그럴수록 우리의 불만의 겨울은 깊어만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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