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 | 전 열린책들 편집이사
1988년 11월, 서독 연방의회 의장 필리프 예닝거는 이상한 연설을 했다. 그는 히틀러를 “신의 섭리로 1천년 만에 독일인들에게 나타난 지도자”라고 부르면서, 그의 영도로 영토가 확장되고 인플레이션이 잡히며 완전고용이 찾아온 것에 독일인들은 감사했다고 말했다. 이 구절들은 죽을 때까지 예닝거를 따라다닐 것이다. 더는 연설을 들어줄 수 없었던 동료 의원 50여명이 중간에 본회의장을 걸어 나갔다. 이 연설은 마침 생중계되는 중이었다. 나치 시절 하룻밤 새 유대인 소유 상점 7천개가 박살 나고 유대인 1백여명이 학살된 ‘수정의 밤’ 50주년 기념 연설이었기 때문이다.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은 예닝거는 다음날 의장직을 사임했다.
예닝거는 집권 기민련(CDU)의 주류 보수 정치인으로 위험한 인물이 아니었다. 비교적 젊은 나이(56세)였던 그는 이전 세대와 달리 나치 전력에서 자유로웠다. 그는 자기 의도가 잘 전달되지 못했다고 해명했는데 그건 사실이다. 연설의 요지는 히틀러 찬미가 아니라 당시 독일인들이 홀린 듯 그를 따랐던 점을 상기시키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예닝거는 독일 국민의 “집단적 책임”이라는 개념을 기성 정치의 장에서 강조하려 한 것이다. 수정의 밤 50주년을 맞아 의례적인 반성에 신선한 자극을 주려는 취지는 나쁘지 않았다.
뭐가 잘못됐는가? 그의 신통치 않은 연설 실력이 가장 큰 문제였는지도 몰랐다. 그가 단조로운 어조로 원고를 읽어 나가는 것을 듣고 있던 독일인들은 대체 어디까지가 히틀러와 그 공범자들의 생각이고 어디부터 예닝거의 생각이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만일 예닝거가 동화 구연가들의 방식을 조금이라도 따라 했다면 사태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들은 것은 “히틀러는 1천년 만에 나타난 지도자” 따위의 말들을 태연하게 읊는 예닝거의 목소리뿐이었다. 전후 독일 사회는 그런 말이 들리면 가만히 있지 말라고 교육해 왔으므로, 카메라 앞에 앉아 있던 정치인들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오히려 이 연설을 텍스트로 접한 외국기자들은 예닝거가 좀 안됐다고 느꼈다. 일부 유대인 단체도 이 연설에 딱히 잘못된 건 없다고 말했다가 대표가 사과하고 사임하는 곤욕을 치렀다.
영국 소설가 줄리언 반스는 “아이러니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어떤 것”이라고 쓴 적이 있다. 아이러니란 사람들이 예상한 것과 반대되는 말을 던져 충격과 반성을 유도하는 기법이다. 반스의 말은 이런 것이다. 많은 농담이 실패하지만 아이러니는 거의 무조건 실패한다. 당신이 ‘히틀러는 악당’ 같은 익숙한 말 대신 뜻밖의 얘기를 들려줌으로써 사람들에게 한차원 높은 반성을 유도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면, 단념해라. 그런 건 하지 마라. 사람들은 애초에 당신의 좋은 의도를 알 턱이 없다. 단지 히틀러에 관해 지금 이상한 소리를 하는 인간을 의아하게(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바라볼 뿐이다.
그 연설은 청중의 섬세한 이해를 몹시 필요로 했으나, 받지는 못했다. 이 실패를 무지나 오해의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처음부터 모두에게 명백했던 또 하나의 주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인이 나치 시절에 관해 언어로 불장난하는 것이 과연 허용될 수 있을까? 사람이 죽은 일은 아이러니나 농담의 대상이 되기 힘들다. 더구나 가해자 쪽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예닝거가 깨닫지 못했거나 고의로 무시한 게 이 주저함의 감각이었고, 그는 대가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