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잉주 대만 전 총통이 27일 중국 대륙 땅을 밟았다. 1949년 국민당이 공산당에 패배해 대만으로 쫓겨간 이후 74년 만에 전·현직 대만 총통을 통틀어 첫 중국 방문이다. 그는 이번 방문이 ‘성묘여행(祭祖之旅)’일 뿐이라고 한다. 중국인들이 조상을 기리는 청명절을 맞아 후난성 샹탄현에 묻혀 있는 조상들 무덤에 제사를 지내고, 국민당 정부 수도였던 난징·충칭과 함께 상하이 등을 돌아보는 개인적 방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과는 달리 실제로는 미묘한 정세를 계산해 던진 ‘정치적 승부수’다. 중국이 대만 무력 통일에 나설 것이라는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내년 1월 대만 총통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곧 미국을 방문해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과 만날 예정이다. 이 시기에 중국을 방문함으로써 마잉주는 대만 여론을 향해 ‘미국만 믿고 평화를 지킬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면서, 자신과 국민당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려 한다.
대만 국민당의 대표적인 ‘친중파’ 정치인인 마잉주는 2008~2016년 8년간 대만 총통으로 재임하면서 ‘양안관계의 황금기’를 이뤘다고 자부한다. 중국과 경제관계는 전성기였고, 2015년 11월에는 싱가포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사상 첫 양안 정상회담도 열었다. 하지만, 2014년 중국과의 서비스무역협정 졸속 체결에 반발해 일어난 해바라기 운동을 기점으로 대만 내 반중정서가 급격히 확산되었다. 이후 중국의 홍콩 탄압, 전투기와 군함을 동원한 군사적 압박이 계속되면서 대만 정치에서 ‘친중’ 국민당의 설 자리는 없어진 듯 보였다.
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펠로시 미 하원의장 방문 뒤 중국이 대만 봉쇄 훈련을 하는 등 전쟁 위기가 고조되자 대만 여론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대만 ‘21세기기금회’의 여론조사에서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한 것처럼 무기만 제공하고 말 것이란 응답이 약 40%였고, 미군을 직접 파견해 지원할 것이란 응답은 10%에 불과했다. 왕신셴 대만정치대학 동아연구소장은 대만 총통 선거에서 ‘미국 의존론’과 ‘미국 의심론’의 경쟁이 핵심 질문이 될 것으로 본다.
중국은 어떻게 반응할까. 이번 방문 일정의 연출자는 공산당의 전략가인 왕후닝 정협 주석이다. 왕후닝은 시진핑 3기 지도부에서 새로운 대만 통일 전략을 만들어내는 임무를 맡고 있다. 중국의 홍콩 탄압으로 설득력을 상실한 ‘일국양제(1국가2체제)’ 대신, 대만인들이 중국과 통일에 동의하게 만들 새 방안을 찾아내려 한다. ‘청명절을 맞아 조상들의 땅을 찾아온 마잉주’는 ‘중국과 대만이 공동의 조상과 전통을 가진 중화민족’임을 강조하려는 중국공산당에 도움이 되는 카드다. 하지만, 마잉주가 중국공산당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면, ‘대만을 위협하는 중국에 굴복하는 매국노’라는 대만 여론의 비난과 역풍만 거세질 수도 있다. 중국에 마잉주는 반갑지만 대하기 껄끄러운 손님이다.
박민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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