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달 22일 서울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인근 직장인을 대상으로 정부 근로시간 69시간 개편안 찬반 설문조사와 공 던지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편집국에서] 전종휘 | 사회정책부장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의 저작권자는 윤석열 대통령이다. 2021년 7월 <매일경제>와 한 인터뷰에서 나왔다. 게임업계 청년들의 말을 전하는 형식이었으나 파장은 작지 않았다. 유력 대선 주자의 말이었던 탓이다.
그런 그가 대통령이 된 뒤 노사의 자율적인 근로시간 선택권을 확보하겠다며 내놓은 국정과제에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등 연장근로시간 총량관리’가 들어간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행정부 수반의 명령이 떨어졌으므로 이제 행정부 공무원들이 할 일은 뚜렷해졌다. 우리 헌법은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66조4항)고 규정한다.
고용노동부가 학자들로 구성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에 의뢰해 근로일 사이 최소 11시간 연속휴식을 전제로 한 주 6일 근무 때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 근로시간 개편방안을 발표한 뒤, 장시간 집중노동의 문제가 불거지자 행정부 수반의 말이 바뀐다.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고. 애초 제시한 주 120시간 지옥 노동에서 절반이나 깎아줬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문제는 이후 행정부에서 빚어진 혼선이다. 수반의 말이 널뛰는 통에 노동부 공무원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종잡을 수 없게 됐다. 주 40시간제에 연장근로 12시간을 더하면 최장 52시간까지 노동할 수 있는 나라에서 도대체 60시간은 어디서 나온 숫자인지도 미스터리다. 한가지 행정을 하기 위해 그 행위의 근거를 열가지는 찾도록 훈련받은 직업공무원들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행정의 주요 근거는 주로 헌법을 중심으로 법률과 시행령(대통령령), 시행규칙(부령), 행정지침을 비롯해 때론 법률을 넘어서는 위력을 발휘하는 ‘대통령 말씀’이다.
행정부 수반이 60시간이란 한도를 정했으므로, 어떤 방식으로든 주당 9시간을 줄여야 한다. 노동부는 입법예고 기간이 끝나자 오는 9월께 다시 수정안을 내겠다면서 일단 시간은 벌었다. 하지만 주 6일 69시간(주 7일 80.5시간) 개편안 발표 때 밝힌 수많은 이유와 근거를 노동부 스스로 온전히 주워담기는 힘들어 보인다. 공무원들은 덫에 빠졌다.
일관성 없는 대통령의 말이 초래한 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2월 5대 은행이 1조원대 성과급을 나눠 가진 사실을 들어 “은행의 돈 잔치”를 강하게 비판했다. 은행의 공공재적 성격과 고금리 시대에 고통받는 서민의 고통을 헤아린 발언이었다. 대통령 발언 뒤 그의 복심이라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시중은행 과점체제를 해소하는 제도 개편에 나섰다.
그렇다면 앞선 정부에서도 무리하게 밀어붙이다 많은 혼란을 낳은 성과급제를 대통령이 계속 만병통치약처럼 들이댈 일이 아니었다. 신년사에서 “직무 중심, 성과급 중심의 전환을 추진하는 기업”에 정부가 차별화된 지원을 하겠다고 강조한 건 다름 아닌 윤 대통령이다. “귀족 강성노조와 타협해 연공서열 시스템에 매몰되는 기업”을 성과급 중심 기업의 반대쪽에 세우는 방식으로 진한 ‘노조 혐오’를 불러일으키면서까지 내놓은 발언이었다.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확산도 이 정부 국정과제다. 대통령이 성과급을 도입하라는 건지 하지 말라는 건지 메시지가 불분명하다.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에 도입한다는 직무급제도 기관별로 따로 설계하고 있다. 소속 회사를 떠나 유사 업종에서 같은 직무를 하면 같은 임금을 줌으로써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한다는 취지와는 동떨어진 행태이나, 행정부 수반은 아무 말이 없다.
대통령이 던지는 메시지엔 일관성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공무원들이 일하기 어렵다. 미국 헤리티지재단이 엮은 책 <성공하는 대통령의 조건>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대통령이 직업공무원들에게 자신의 목표를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집권당이 바뀌었을 때는 특히 그러하다”, “대통령과 고위 지명직 인사들은 자신들의 목표가 무엇인지 직업공무원들이 분명히 알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침 이 책을 번역한 이(장성민 정책조정기획관)가 대통령비서실에서 일하고 있으니, 행정부 수반이 직접 불러서 물어보는 것도 좋겠다. 공무원들한테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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