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1928~2017)
미국을 제국이라고 했다. “세계는 미국의 우월적 지위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면으로 맞설 수 없다”고 했다. 다른 나라 사람이 이 말을 했다면 반미주의자로 몰렸을지 모른다. 냉전 이후 미국 외교정책의 설계자 중 하나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한 말이다.
폴란드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쳐들어오자 그의 가족들은 캐나다로 망명했다. “남들이 미국 땅을 보려고 육지 쪽 갑판으로 몰린 동안 어린 그는 바다 쪽 갑판에 남아 폴란드 쪽에서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고 한다.” 아들이 전하는 이야기다. 캐나다와 미국에서 지정학과 국제정치를 공부했다. 하버드대와 컬럼비아대에서 교수로 있으며 미국 외교정책을 자문했고, 1977년부터 카터 행정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일했다. 현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미국 외교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학자로서도 행정부에 참여해서도, 유라시아 대륙에의 지정학적 접근을 통한 미국의 패권 유지·강화를 역설했다.
일방주의적 중동 정책을 비판했다. “12억 이슬람 신자의 참여 없이 세계 평화에 도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해법은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중동 문제를 다루는 일에 “기대할 수 있는 미국의 유일한 동반자”는 유럽이라고 썼다. 중동 사람들이 달가워할까?
동아시아 전략 역시 그랬다. “일본이 미국의 궁극적 동반자로 간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미-일 관계에 딸려 가는 셈일까. 한국 사람으로서 심란하다.
2017년 5월26일 세상을 떠났다. 한국 사회의 반응은 엇갈렸다. “전두환 정권 시절 김대중을 살리는 일에 기여”(연합뉴스)했다는 평가와 “광주민주화운동 때 전두환 신군부의 유혈진압을 사실상 묵인”(한겨레)했다는 비판이 동시에 나왔다. 둘 다 미국의 전략이었다.
브레진스키의 시각이 불편하더라도, 우리는 그의 유산을 알아야 한다. “미국의 유라시아 전략에 비해, 우리는 미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전략을 세워놓는 것일까?” 브레진스키의 책을 번역한 김명섭 교수의 지적이다. “미국에 대한 (1980년대의) 그 많은 담론은 어디로 간 것일까? 토론의 실종은 단지 지적 마비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