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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타인의 취향

등록 2023-06-08 19:18수정 2023-06-09 02:36

영화 <타인의 취향>(2000) 포스터.
영화 <타인의 취향>(2000) 포스터.

[크리틱] 김영준 | 전 열린책들 편집이사

자수성가한 중소기업 사장 카스텔라씨는 연극 같은 것을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마지못해 극장에 왔던 그는 지루할 거라고 생각했던 고전극에서 뜻밖에 감동을 받고, 다음날 그 연극을 한번 더 본다. 그는 공연이 끝난 뒤 주연 배우 클라라가 친구들과 뒤풀이하는 자리에도 자기가 돈을 내겠다며 끼어든다. 클라라에게 완전히 매료된 그는 부끄러움을 잊은 것 같다. 클라라의 친구들은 입센도 모르고 테네시 윌리엄스도 모르는 이 침입자의 무교양에 경악하지만, 곧 그를 적당히 놀리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가엾은 카스텔라는 자기가 놀림을 받는 줄도 모른다. 아무튼 그는 이때 알게 된 화가의 전시회에 가서 좋아 보이는 그림을 한점 사고, 그 아이디어가 어디서 시작됐는지 분명치 않지만 자신의 공장에 벽화를 그리는 프로젝트를 이 화가에게 의뢰한다.

자기 친구들이 카스텔라를 경멸하는 것도 알고, 그들이 이 순진한 기업가를 이용한다고 생각한 클라라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고 느낀다. 그녀는 진실을 알려주기 위해 카스텔라의 사무실을 방문한다. 그녀의 얘기를 들은 카스텔라는 담담히 말한다. “내가 당신 마음에 들기 위해 그 그림도 사고 벽화도 발주했다는 얘기로 들리는군요.”

“…”

“그 그림이 좋아서 내가 샀을 거라는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나요?”

아녜스 자우이의 <타인의 취향>(2000)은 취향에 대한 영화가 아니었다. 영화의 질문은 이런 것이다. ‘우리는 어쩜 그렇게 타인의 수준을 잘 아는가?’ 카스텔라의 대사는 강력하기는 하지만 엄청난 반전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는 답답할 것이다. 그는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구입했다는 얘기를 초반에도 이미 했다. 문제는 아무도 그의 말을 진지하게 취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이 예술적 감동의 근거라는 생각, 예컨대 무지한 카스텔라가 인간이기 때문에 고전극에 감동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라고 본다. 경제적 자본이 그렇듯 문화적 자본도 불균등하게 분포되어 있으며, 그것이 제공하는 혜택이나 학습을 거의 받지 못한 노동자 계급 출신이 이른바 고급예술을 즐기기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부르디외의 의도와 반대로 이런 관점이 지식인적인 편견을 묘하게 강화하기도 하는 듯하다. 클라라와 친구들이 의심하지 않고 그랬듯이 말이다.

사람들의 미감이 보편적이기는커녕 얼마나 사회적으로 분리된 것인지 증명하는 부르디외의 설문조사 중 나는 이런 게 재미있었다. “아름다운 사진을 찍기 위해 당신은 어떤 피사체를 선택하겠습니까?” 양배추 같은 일상의 사물을 적어 낸 사람들은 상류층이었다. 노을, 댄스파티 등을 적어낸 사람들은 중하류층이었다. 분명 상류층은 사진집이나 전시회를 본 적이 있다. 그들은 대가들이 무엇을 어떻게 찍었는지 기억하는 것이다.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 중하류층은 예술을 생활과 무관한, 초월적이고 특별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차이가 그리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사실이다. 프로 창작자가 되는 것이 아닌 이상, 수용자로서 노을에서 양배추로 건너가는 것은 한두주의 동네 문화강좌 수강으로도 충분히 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카스텔라를 얼핏 예술과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인물로 설정했을 뿐, 그와 같은 사례가 많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처음 예술에 빠진 사람들은 모두 카스텔라씨를 닮았다. 그들은 평소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고 생업과 무관한 일에 사로잡혀서는 뭔가 감동을 표현하려고 애쓴다. 그 감상이 서툴고 어디서 들어본 듯한 말뿐인 건 당연한 일이다. 입문자들은 다 그런 시절을 겪는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걸 가식이라고 기각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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