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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선출직 공무원들의 과도한 노출

등록 2023-06-22 19:11수정 2023-06-23 02:37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17일 오전 대구 중구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열린 대구퀴어문화축제 행정대집행 현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17일 오전 대구 중구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열린 대구퀴어문화축제 행정대집행 현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온 뒤 무지개] 한채윤 |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노출이 과도하다. 날씨가 더워서가 아니다. 우리나라 선출직 공무원들이 본인의 업무보다는 엉뚱한 곳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노출이 하도 심해서 눈꼴사나워 하는 말이다. 대통령은 검찰에서 일하던 시절 관련 수사를 한 경험이 있다며 수능 정책 최강자로 떴다. 대통령 말씀이 한마디씩 노출될 때마다 입시 전문가, 학원가까지 들썩이고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놀라움에 입을 다물 수 없다.

대구의 시장님은 또 어떤가. 공직자로서 기자회견이나 공식 브리핑하는 것도 아니고 틈날 때마다 페이스북에 끄적거리면 그대로 기사화된다. 대구시장은 이걸 잘 알아서 기자들이 받아쓰기 좋게 글을 올린다. ‘1% 소수자의 권익만 중요하냐, 99% 성다수자는 피해를 봐야 하냐’는 식의 표현 말이다. 성다수자란 말은 사실 없다. 성소수자의 반대말이 성다수자가 아니다. 소수자는 숫자가 적다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챙기듯 사회적 강자의 권익도 챙겨야 한다고 말한 거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말이 안되는 이야기인지 이해가 된다. 강자의 권익만 중심으로 세상이 짜여 차별받고 힘들게 살 수밖에 없는 약자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 시민들의 권익을 지키고 보호하려면 가장 먼저 약자부터 챙기는 것이 맞다. 시장의 페이스북을 그대로 받아쓰는 기자들도 문제다. 혐오 발언을 세상에 잘 보이게 노출해준다. 굳이 그래야만 뉴스 보도가 될까?

다른 사람이 썼으면 인용되지 않았을 텐데 유력한 대선 후보임을 대중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애쓰는 대구시장이 쓰고, 다시 기사화되니 엉터리 용어가 너무 많이 노출돼 누구나 써도 되는 것처럼 굳어질까 걱정이다. 게다가 굳이 휴일에 공무원 500여명이나 출근시켜서 경찰과 몸싸움하게 했다. 대구퀴어문화축제가 도로에 부스와 무대를 설치하고 행사를 진행한 것은 코로나 이전부터 있었던 일인데 갑자기 시장이 트집을 잡았다. 공무원들끼리 싸우는 장면을 연출해 대구시장은 더욱더 이름을 언론에 노출했겠지만 그 자리에 어쩔 수 없이 나간 공무원들은 폭력에 노출됐다. 이런 식의 과도한 노출이야말로 시민으로서 반대한다.

대구에 뒤지지 않는 선출직 공무원이 서울에도 있다. 서울시장은 지난 13일 서울시의회 시정 질문 시간에 개인적으로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발언했다. 매우 불필요한 개인 생각 노출이다. 시의원이 시장에게 질문했으니 시장으로서 답하면 되는데 굳이 개인 생각을 드러낸다. 근래 인천시가 인천여성영화제에서 퀴어영화는 상영하지 말라고 검열했다. 부산국제영화제부터 1990년대 이후 한국의 거의 모든 영화제에서 퀴어영화가 상영됐음을 생각하면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선출직 공직자가 행정을 통해 자신의 편견과 혐오를 스스럼없이 노출하는 세상이 된 것인가.

노출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옷으로 몸을 가리지 않는 것을 떠올린다.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어떻게든 노출과 연결하려는 이들은 축제 참가자 10만명 중에서 서너명의 옷차림을 문제 삼아 축제 전체를 ‘음란’으로 낙인 찍는다. 지난해 퀴어퍼레이드에선 바라는 대로 노출을 한 참가자가 없었는지 옷 위로 괜히 모자이크 처리해 심한 노출을 한 것처럼 보이도록 한 사진도 보았다. 혐오세력은 이젠 없는 노출도 만든다. 축제 참가자의 노출이 문제가 아니라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과 참가자들이 혐오와 차별, 폭언에 노출되는 것이 진짜 문제 아닌가.

자치단체장들이 선거를 의식해 자신의 이름 한번 더 노출하려고 서슴없이 차별을 저지르고 혐오에 물들어가는 와중에도 어김없이 꿋꿋하게 제24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 6월22일 시작돼 7월9일까지 퀴어퍼레이드, 한국퀴어영화제, 온라인퀴어퍼레이드 및 레인보우 굿즈전 등 다채로운 행사들이 진행된다.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노출하는 날이다. 부디 축제에 참여해 이 아름다운 노출을 생생하게 즐기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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