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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하늘을 사랑한 조종사, 우리 마음속 영원한 ‘어린 왕자’로

등록 2023-06-29 19:10수정 2023-06-30 02:10

[나는 역사다] 생텍쥐페리(1900~1944)

생텍쥐페리는 1900년 6월29일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났다. 3년 뒤인 1903년 비행기가 발명됐다. 그의 집 근처에 비행장이 들어섰다. “위험하니 타지 말라”는 어머니 몰래, 열두살 되던 해 생텍쥐페리는 비행기를 얻어탔다. 1921년에는 비싼 돈을 들여 개인 교습을 받고 비행사 자격증을 땄다. 이런저런 직업을 가져봤지만, 하늘을 나는 꿈을 끝내 버릴 수 없었다. 1926년 항공우편 회사에 취직했다.

비행기가 발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기에 비행사는 위험한 직업이었다. 북아프리카 쥐비곶 비행장에서 일하던 1928년엔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사들을 네 차례 구해줬다. 1930년에는 안데스산맥 눈밭에서 실종된 동료를 5일 동안 수색했다.(나중에 살아돌아왔다) 자신도 여러번 사고를 겪었다. 1932년과 1933년 비행기가 물에 빠져 죽을 뻔했고, 1935년에는 리비아사막에 불시착해 실종됐다가 구조됐다. 1938년에는 중미 과테말라 활주로에서 크게 다쳤다.

비행하며 겪은 일을 글로 썼다. 책 <남방 우편기> <야간 비행> <인간의 대지>를 냈다. 생텍쥐페리의 종손녀 나탈리 데 발리에르에 따르면, 작품이 성공하자 “작가 쪽과 비행사 쪽 양쪽 모두 그를 시기했다.” 잠시 따돌림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도 글을 썼고, 프랑스와 미국에서 인기 작가가 됐다.

1939년 유럽에서 전쟁의 기운이 팽배해지자 프랑스 공군 조종장교로 소집됐다. 1940년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했을 때 무사히 정찰비행을 마쳐 무공훈장을 받았으나, 프랑스는 독일에 항복했다. 나치 독일의 괴뢰 정부가 들어서자 생텍쥐페리는 미국으로 떠났다. 편집자 알방 스리지에에 따르면 “생텍쥐페리는 당시 미국인들에게 낯선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뉴욕에서 <어린 왕자>를 썼다. 1944년 4월 책이 미국의 서점에 깔렸으나 생텍쥐페리는 보지 못했다. <어린 왕자>를 인쇄할 무렵에 미국을 떠났기 때문이다. 나치와 싸우기 위해 북아프리카로 향했다. 적지 않은 나이인데도 직접 정찰비행을 하겠다고 고집했다. 7월31일까지만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기로 하고 그날 마지막 출격을 한 생텍쥐페리, 비행기도 사람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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